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5-12-05 08:00:20
펭수 신드롬을 일으킨 이슬예나 PD의 신작 <긍정왕 김땅콩>은 세상을 향한 긍정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개, 김땅콩이 현실을 풍자하는 페이크 다큐다. 부조리한 상황을 완전 호감으로 뒤집는 긍정의 서사와 김땅콩이 선사하는 짜릿한 카타르시스에 시청자들은 환호한다. 하지만 김땅콩의 진짜 매력은 동의 없는 중성화 수술을 당하고 끝내 버림받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개극호!”를 외치는 웃픈 긍정이라고 이 PD는 귀띔한다.
JTBC 이적 후 첫 작품이다. 주위의 기대가 부담스럽진 않았나?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다만 주위 기대에 대한 부담보다 스스로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내 색깔을 녹이면서 전작과 다른 걸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김땅콩은 어떤 종의 개인가?
아프간하운드와 몰티즈 믹스견이다.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처음 막연히 떠올렸던 장면은 ‘개만도 못한 인간과 인간보다 나은 개’라는 단순하지만 아이러니한 대비였다. 우리가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말을 장발의 신사견이 찰랑이는 털을 흔들며 대신 해준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찾아보니 아프간하운드가 복종 훈련 테스트에서 모든 견종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던데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상상하다 보니 민첩하고 절대 참지 않는 몰티즈의 면모도 떠올라 아프간하운드와 몰티즈의 혼종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주둥이가 길어지기 전 아기시절에 작고 귀엽고 포슬포슬한 외모로 인간들이 침 좀 흘리게 했다면 더 매력적이겠다는 느낌이 팍 들었다.
펭귄에 이어 이번엔 개다. 동물 캐릭터가 지닌 장점은?
말이 통하는 동물 친구는 인간이 오랫동안 원해왔던 존재다. 똑같은 말도 동물이 해주면 더 귀엽고 웃기다. 사람 친구를 안는 건 어쩐지 조금 쑥스럽지만 동물 친구를 안는 건 상상만으로도 포근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동물은 인간이 줄 수 없는 종류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회사 막내가 사장 이름을 대놓고 막 부르면 버릇없어 보이지만 펭수가 “김명중, 김명중”하고 불러대니 그냥 어이없고 직장인으로서의 한이 왠지 조금 풀리는 것 같지 않은가. 실제 인간 공무원은 진상 민원인이 와도 지침에 따라 대응해야 하지만 땅콩이는 오은영 선생님처럼 훈육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용실에 가서 자기 돈 내고 이용하는데도 하고픈 말을 다 못하는데 땅콩이는 “원장님한테 예약했는데 왜 원장님이 안 봐주느냐”며 당당하게 말한다. 그게 위화감이 들지 않고 내가 하고픈 말과 행동을 대신해 줘 속이 시원하고 웃음이 난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김땅콩의 매력은?
내가 못 할 말을 시원하게 대신해 주는 것이 큰 매력이다. 하지만 땅콩이는 인간들을 훈육하러 다니는 존재가 아니다. 동의 없이 중성화 수술을 당하고 수십 번 파양 당해도 인간을 사랑하는 어쩔 수 없는 댕댕이다. 집도 절도 없어도 “개극호∼!”를 외치며 긍정왕으로 살아가는 모습, 그 웃픈 긍정이 바로 땅콩이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녹록하지 않은 세상에서도 웃으며 살아보려는 우리 모습이 투영돼 많은 분이 마음을 내어주시는 것 같다.
SNL 작가진에게 기대한 점, 그리고 당부한 건?
제작에 참여한 유준상, 김미정, 최재연 작가님 모두 코미디와 캐릭터에 강점이 있는 창작자다. 땅콩이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재미있게 풀어내 줄 거라 기대했다. 실제 회의를 거치면서 내 예상보다 훨씬 위트 있는 플롯과 대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 당부했던 건 땅콩이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아이디어가 워낙 풍부한 작가님들과 박장대소하며 회의하다 보면 어느새 서브 캐릭터나 다른 게 더 돋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 반응 중 가장 의외였거나 기억에 남는 반응을 꼽는다면?
개그우먼 강유미 님과 ‘파양’편을 찍었다. 처음엔 귀여워 하다가 점점 무심해지는 견주와 점점 외로워지는 강아지의 서사를 회피형-집착형 현실 연인 관계에 빗댄 에피소드였다. 강유미 님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땅콩이와 잘 어우러져 현장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내레이션을 맡은 아나운서 이태연 님도 더빙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였는데 막상 완성본을 보니 눈물이 난다고 했다. 구독자들도 정말 많이 슬퍼했다. 하지만 만족스러웠다. 땅콩이가 짠해서 정이 가는 에피소드가 되었으니까.
김땅콩이 대중과 직접 만나는 기회도 있을까?
최근 ‘긍정왕 김땅콩의 개극호 다이어리’가 나왔는데 서점에서 팬 미팅을 진행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땅콩이가 계속 있는 건 아니지만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는 울트라 백화점 전시에도 참여하고 있다. 많은 관심을 갖고 찾아와 김땅콩의 매력을 느껴보길 바란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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