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안재훈 감독, 결국 희망을 얘기해요

Interview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6-09-04 14:00:14

고유의 색채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독보적인 길을 개척해온 안재훈 감독이 연출을 맡은 장편 애니메이션 <아가미>가 9월 9일 개봉한다.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이 작품은 깊은 물속에 던져진 날, 죽음의 문턱에서 아가미를 갖게 된 세상에서 유일한 아이 곤과 그의 세계에 전부였던 존재들의 슬픈 운명을 그린다. 안 감독은 원작의 정서를 바탕으로 오직 애니메이션에서만 가능한 회화적, 판타지적 세계관을 무한히 확장해 작품을 완성했다. 그는 "원작의 느낌을 품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현실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닌 아름다워 몰입할 수밖에 없는 판타지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무녀도> 이후 5년 만의 개봉작이다. 소감은?

만들 때는 즐거운데 관객을 만나러 갈 때는 즐거움이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웃음) 등수가 매겨지지 않는 시험을 보러 가는 기분이다.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작품을 만들 때마다 이번이 관객을 만나는 마지막 기회란 각오로 모든 걸 쏟아붓는다. <아가미>도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기에 아쉬움은 없다. 다음 기회는 관객이 주는 거니까.

원작으로 《아가미》를 선택한 이유는?

<살아오름: 천년의 동행> 제작이 마무리되어갈 즈음이었다. '장편을 계속 만들어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져있을 때, 어느 스태프가 《아가미》를 읽고 와서 "우리가 꼭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하더라. 뒤이어 읽은 스태프들도 하나같았다. 읽었더니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여러 이야기가 끌렸다. 20∼30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만들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극장판 하나 만들 때마다 벼랑 끝에 서는 심정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다들 공감했기에 제작을 결심했다.

구병모 작가와 특별히 나눈 얘기는 없었나?

편지만 한두 번 오갔다. 작가님 또한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지난한 창작이란 걸 깊이 이해하고 계셔서 참 고마웠다. 난 작가로서 드러내고 싶진 않지만 들켰으면 하는 부분을 잘 찾아서 애니메이션에 담으려고 했다.

 

중점적으로 유지하려 한 원작의 정서,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새로 확장 변주한 요소는?

살아야 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메시지,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원작의 매력이었다. 그래서 관객이 스스로 주제를 만들어보는 작품으로 느끼도록 그런 복잡하고 정리되지 않은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가장 크게 변화를 준 건 배경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모습을 열심히 그렸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게 접근했다. 관객에게 새로운 시각적 재미를 주고자 했다. 원작이 축축하고 오래된 이불에 쌓여 있는 것 같은 어두운 느낌을 줬다면, 애니메이션에서는 공간 배경을 유럽풍으로 바꿔 환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들도록 했다. 원작의 충실한 재현보다는 소설을 읽은 관객이 애니메이션으로 한 번 더 감동하고 작가의 메시지를 한 번 더 되새겨보게끔 하는 데 중점을 뒀다.
 

 

큰 울림을 준 장면이나 대사를 꼽는다면?

여러 장면이 있지만, 무엇보다 읽고 나서 떠오르는 느낌이 가장 큰 울림을 준 듯하다. 심적으로 힘들 때 읽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내 몸에 상처가 많구나'라고 생각하던 때, '아가미처럼 이 상처가 결국에는 나를 살게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느꼈다. 관객도 이런 감정을 느낄 거다. 아픈 상처가 숨 쉴 수 있는 아가미로 느껴지는 순간 말이다. 관객은 극장에서 내가 누군가의 아가미가 되고, 누군가의 상처가 되는 그런 복합적인 상황과 분위기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가장 공들이거나 고뇌했던 포인트는 뭔가?

사실 지금까지 안재훈의 색깔로 작품을 만들었다면, <아가미>는 연필로 명상하기 스태프의 색깔로 만든 첫 작품이다. 만약 관객들이 그간의 내 그림체를 즐겼다면 고집했겠지만, 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스태프의 의견을 받아 캐릭터를 그려갔다. 여태 그려보지 않은 그림을 그리려니 처음엔 조금 생소했다. 형체가 아름다운 캐릭터에 포즈, 제스처, 동작, 연기를 맞추는 게 어려웠다. 눈동자 표현의 경우 어느 스태프가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고돼도 처음부터 끝까지 공들여 작업한 덕에 마침내 찬란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낼 수 있었다.


목소리 출연진이 화려하다. 평소 교분이 있었나?

직접적으로는 잘 모른다. 그저 <아가미>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마음속에 담고 있었는데, 작품을 먼저 보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신기할 만큼 의견이 딱 맞았다. 소개받는 과정도 아름다웠고 작업 결과도 정말 훌륭했다. 많은 분의 도움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런 것을 보며 <아가미>, 그리고 그간 우리가 선보였던 작품들이 가진 힘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의 작업 태도, 고유의 빛깔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지켜보고 응원하고 참여하려는 이들이 있었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이 어떤 마음을 갖길 바라나?

"살아가라.", "헤엄쳐야 한다." 극장을 나갈 때 분명 이 두 가지 말이 떠오를 것이다. 나 스스로 두 팔을 휘저어 헤엄쳐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나를 살라고 말하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느끼길 바란다. 결국 <아가미>가 건네는 것은 희망이다. 아가미가 되어버린 각자의 상처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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