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4-05-16 08:00:51
애니메이션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장인 정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2017년 입사했다. 대학에서 2D 애니메이션을 주로 공부했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3D가 대세여서 이곳에 들어와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웃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존경한다. 자신의 사상을 작품에 몽환적으로 잘 녹여내는 그의 스타일과 철학을 닮고 싶다.
원래 애니메이션 PD를 꿈꿨나?
아예 생각조차 없었다.(웃음) 원래는 연출을 해보고 싶었다. 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웃음) 스토리보드나 애니메틱스 작업은 외주를 맡기다 보니 연출 외 다른 일에 집중해야 했다. 그러다 애코와 친구들 수리수리 메타 월드 대모험을 준비하면서 복셀(Voxel, 3차원 형태의 픽셀)아트 모델링 작업에 익숙해지고 재미가 붙으니 다른 파트도 맡게 됐다. 캐릭터, 어셋(영상 구성요소), 게임 랜드(스테이지) 꾸미기 등을 담당했는데 무대를 디자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 역시 또 다른 분야의 연출이란 생각이 든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당연히 지상파 공개를 앞둔 애코와 친구들 수리수리 메타월드 대모험이다. 수학놀이 애니메이션 애코와 친구들 시즌1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메타버스 게임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더 샌드박스에서 이용자가 실제 게임을 즐기는 영상을 방송용으로 재편집해 내보낼 예정이다. 작년에 갖은 고생을 해서 만들다 보니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었다.(웃음)지금까지 만들어왔던 애니메이션 말고 좀 색다른 걸 해보자며 아이디어를 짜내고 기획할 때가 엄청 힘들었다. 스트리머를 데려와 방송을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으긴 했는데 스트리머 누구를 선정해 무슨 게임을 하게 하느냐는 것에서부터 벽에 부딪혔다. 시간은 흐르는데 일은 더디고 고민도 산더미 같았다. 해보지 않았던 걸 하려니 모든 게 어려웠다. 랜드 15개를 만들기까지 고난의 연속이었다.(웃음)그래서 힘든 만큼 정이 많이 들었다. 마침 오늘(4월 1일) 게임을 공식 론칭했다.
작품을 만들면서 뿌듯했던 순간 그리고 아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작년 여름에 더 샌드박스가 애코와 친구들 수리수리 메타월드 대모험을 일반에 공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빌더(게임 프로그램 개발자)들을 모아놓고 각자 만들고 있는 것을 소개하는 자리였는데 우리 게임을 해본 사람들이 평가를 내려줄 때 기분이 좋더라.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하지 않던가. 막상 내놨을 때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지나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평가의 대상이 됐다는 점, 그리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개선점을 말해줄 때 좋았다. 반대로 뭔가를 만들어 내놨을 때 “그래서 얼마 벌었냐?” 며 돈에만 관심을 보이면 속상하다. 김이 팍 샌다고나 할까. ‘내가 왜 이런 걸 만들고 있지?’ 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시청자보다 내가 우선 재미를 느껴야 한다. 제작할 때가 가장 재밌다. 그게 없다면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게 흥미롭다. 처음에 어쩌다 이런저런 얘기가 나와서 어떻게 기획하고 모양을 갖춰 어떻게 끝나는지를 보고 있으면 정말 신난다. 그 과정에 푹 빠져든다. 작품을 끝냈을 때 성취감도 크다. 어셋을 만들어 움직임을 주고 영상에서 어떤 역할을 부여받아 움직이는 걸 보면 환상적인 느낌을 받는다. 창작물이 콘텐츠에서 어떤 역할을 해낼 때 뿌듯하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나 이야기가 있다면?
공포 장르를 선호한다. 팀 버튼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아기자기한 소재로 공포물을 만들어보고 싶다. 또 유·아동이든 성인이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세대가 보고 즐기고 공감하는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 인사이드 아웃, 주토피아처럼 아이와 어른이 같이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도전해보고 싶다. 삶이나 사회를 향한 심오한 질문, 철학적인 이야기도 좋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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