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훈 칼럼니스트
studiomwp@naver.com | 2026-09-03 14:00:58
조은교_ 홍익대생
<아가미> 관람을 앞두고 일주일 전부터 원작 소설을 읽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읽지 않은 채 극장에 갔다. 물론 원작 소설을 미리 읽었다면 더 깊게 몰입하고 짚어낼 수 있는 세밀한 장면들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원작을 모르는 사람이 이 영화를 봐도 온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길 바랐다. 만일 책을 무조건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면, 그건 이미 매체로서의 독립성과 생명력을 잃어 매력이 크게 떨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가미>는 그런 우려를 완전히 지웠다. 애니메이션 그 자체의 힘으로 관객을 설득해내는 단단한 주축이 있어 만족스러웠다.
잔잔하면서도 현실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화면들과 담담함 끝에서 문득문득 보여주는 판타지적인 화면 전환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배로 느끼게 해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마치 일상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 예상치 못한 푸른 물결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절묘하게 오가며 관객을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이끄는 흐름이 인상 깊었다.
작품을 감상하고 남겨진 감정은 묵직한 불편함이었다. 이녕은 자신의 꿈을 위해 어린 강하를 떠나고, 강하는 곤을 향한 소유욕과 통제를 폭력이라는 서툰 형태로 드러낸다. 해류는 오랫동안 병든 어머니를 홀로 부양하며 외로움과 고단함을 느낀다. 곤의 아버지는 절망 속에서 어린 곤을 데리고 호수로 뛰어들어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등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결핍과 이기심을 안고 있다.
김수아 _ 순천향대생
<아가미>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서사도, 악을 처치하는 구조도 아니다. 대신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 그 자체를 담담하게 따라가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의 축적과 자연스러운 장면의 흐름이 극적인 사건보다 인물들의 삶 자체를 바라보게 했다.
차효린 _ 이화여대생
"살아줬으면 하니까."
<아가미>를 보며 가장 크게 울림이 남았던 대사다. 영화를 보고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있는 것 같다. 사랑이라고 하면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연인 간의 사랑부터, 우정, 가족애, 동료애, 자기애까지, 사랑은 그 대상과 관계의 방식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영화 속 강하가 곤에게 느끼는 애착 또한 사랑의 한 형태라고 느꼈는데, 특히 큰 틀에서 보았을 때 부모의 사랑과 닮은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강하는 곤의 비늘과 아가미를 보고, 곤의 정체가 관련 기관에 알려지면 생체 실험을 당할 것을 걱정해 정체를 숨겨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반짝이는 것은 혼자 봐야 한다"는 이녕의 말을 떠올리며 더욱더 곤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 한다.
곤에 대한 강하의 애착은 처음에는 소유욕과 독점욕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곤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할 때면 과격한 행동들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심하게 머리를 잘라주고, 씻겨주고, 함께 동네 구경을 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곤을 돌보고 세상을 경험하게 한다. 이녕이 죽었을 때도 강하는 곤의 정체가 경찰에게 알려지는 것을 염려해 도망칠 수 있도록 놓아준다. 아꼈기에 세상으로부터 꼭꼭 숨긴 곤을, 이제는 '살아줬으면 하니까' 역설적으로 세상으로 도망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강하의 애정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닮은 면이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껴온 부모의 사랑은 '그럼에도'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어릴 땐 부모님이 내 세상의 전부였고, 성장하면서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내 세상을 넓혀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부모님 역시 순간적으로 속상하고 미운 감정을 느꼈겠지만, 결국에는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기에 용서하고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강하와 곤의 관계 역시 이와 비슷하다.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온 곤에게는 강하가 자신의 세상 전부였을 거다. 함께 동네를 구경하고, 세상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강하를 통해 곤의 세상은 조금씩 넓어진다. 강하가 곤에게 '살아줬으면 해서' 도망치라고 한 이유도 부모의 사랑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녕이 다치고 죽어가는 상황에서 그 곁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곤이 원망스럽지만, 그럼에도 강하는 곤을 존재 자체로서 존중하고 사랑하기에 자신에게서 벗어나서라도 곤이 자신을 보호하며 살아가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영화를 보는 내내 곤과 강하 사이의 애정이 정말 크고 서로를 향한 애정이 무조건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로맨스나 로맨스 코미디를 볼 때보다 훨씬 벅차고 아름다운 감정으로 다가왔다. 애니메이션의 작화도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 윤슬이 아주 반짝였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곤과 강하의 관계를 떠올리면 그 장면이 함께 떠오른다.
아름답고, 벅찬 감정. 어쩌면 곤과 강하는 서로에게 사랑 이상의 존재,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삶의 아가미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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