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재 교수와 함께하는 AI 활용 가이드] 방학에 벌인 실험, AI툰 스터디 현장: 15일, 70컷, 그리고 사람의 판단

Column

김한재 칼럼니스트

hanjae.elly.kim@gmail.com | 2026-08-21 14:00:57


7월 4일, 오픈채팅방 하나가 열렸다. 이름은 ‘AI toon study 15day’. 목표는 단순하고 무모했다. 15일 안에 70컷, 12페이지 분량의 AI툰 한 편을 완성하는 것. 웹툰 한 회를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이 숫자가 어떤 의미인지 안다. 기획부터 발행까지 보통은 몇 달이 걸리는 여정이다. 그것을 2주로 압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또 하나의 오픈채팅방이 열렸다. ‘AI toon-comic Beta Tester’. 이번 여름은 그렇게 조용히, 하지만 누구보다 바쁘게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물론 믿는 구석이 있었다. 생성형 AI. 지난 몇 년 새 AI 이미지 생성 도구는 놀라운 속도로 진화했고, 이제는 ‘AI로 웹툰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낡은 것이 되었다.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디까지 AI에게 맡기고, 어디서부터 사람이 붙잡을 것인가. 그리고 이 과정을 교육으로 옮긴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이번 스터디는 이 질문들에 대한 현장 실험이었다. 강의실에서 이론으로 다루는 대신 실제로 15일 동안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보며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교재는 ‘나노바나나로 AI툰 제작하기’. 참여자는 일반 창작 지망생부터 강동대 만화웹툰콘텐츠학과 학생까지 다양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수료증까지 무사히 받았다. 그러나 이 스터디가 남긴 건 수료라는 표면보다 의미가 훨씬 크다.

 

스터디는 어떻게 굴러갔나

운영방식부터 실험이었다. 뼈대는 세 가지였다. 오픈채팅방에서 매일 과제 인증, 줌 특강, 그리고 강남역에서 오프라인 결과 공유회 갖기. 온라인의 지속성과 오프라인의 밀도를 포함한 형태였다.
 

핵심 장치는 ‘매일 자정까지 과제 인증’이었다. 창작 교육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지속이다. 첫 사흘의 열의는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일주일째, 열흘째다. 매일 인증이라는 규칙은 이 고비를 넘기게 하는 리듬을 만들어준다. 오늘 밤 자정까지 무언가를 올려야 한다는 사실이 완벽한 결과물 대신 ‘오늘의 진도’를 만들어내게 한다. 창작은 결국 진도의 누적이다. 여기에 동기 설계를 얹었다. 일반 참여자는 보증금 2만 원을 걸고, 과제를 인증할 때마다 하루 1,000원씩 돌려받는다. 돈의 액수보다 ‘뭔가를 걸었다’는 행위 자체가 몰입하게 한다.
 

학생은 다르게 설계했다. 보증금 없이 참여하되, 2학기 관련 과목에서 최대 10점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방학 중 학습을 정규 수업과 연결하는 다리를 놓은 셈이다. 성인에게는 손실 회피를, 학생에게는 학기의 연속성을 동기로 삼은 것이다.
 

여기에 외부 전문가 특강이 결합했다. AI 만화와 연결할 수 있는 조남경 작가님의 클로드 기반 AI toon 스킬 특강, 배현수 님의 노트북LM 특강이 이어졌고, 스터디 후반에는 AI toon-comic 스킬 베타 테스트까지 연결됐다. 마지막 수료식 날에는 최진규 작가님의 AI toon 바이브코딩 안내까지, 그야말로 종합 패키지였다. 강사 한 명이 지식을 전달하는 구조 대신 참여자들이 서로의 도구와 템플릿, 시행착오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공동 실험실에 가까웠다. 누군가 편집 도구를 찾아내면 다음 날 모두가 그걸 쓰고 있었다. 누군가는 만다라트 템플릿을 나누었고, 누군가는 직접 만든 웹툰 뷰어를 올렸다. “망했다”는 말 뒤에는 곧바로 “그래도 다시 해보자”가 따라붙었고, 자정 직전의 아슬아슬한 인증에는 박수가 쏟아졌다.
 

바쁘고 정신없고 가끔 버거웠지만 신났다. AI 창작 교육이 커뮤니티형 학습과 잘 맞는다는 것을 필자는 이번에 눈으로 확인했다. 
 


그림보다 이야기가 먼저였다

앞으로 스터디를 계획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커리큘럼을 공개한다. 커리큘럼은 열 단계로 짰다. 장르 정하기, 타이틀과 로그라인, 만다라트, 캐릭터 시트, 배경 설정, 3막 구조와 세이브 더 캣, 글 콘티, 그림 콘티, 컷 생성, 편집과 발행. 순서를 눈여겨봐 주기 바란다. AI 이미지 생성은 아홉 번째에야 등장한다. 앞의 여덟 단계는 전부 이야기와 설계의 영역이다.
 

의도적인 배치였다. AI툰 교육이라고 하면 흔히 프롬프트 작성법이나 그림체 뽑는 요령을 떠올리지만, 15일을 지켜본 결론은 정반대 지점을 가리켰다.
 

작품의 완성도를 가른 건 이미지 생성 실력에 앞서 이야기의 밀도였다. 작가가 끌고 갈 이야기보따리가 큰 사람은 AI로도 잘 풀어냈다. 보따리가 빈 사람은 아무리 좋은 도구를 쥐여줘도 헤맸다. 그래서 스터디 내내 전통 작법을 붙들었다. 3막 구조, 세이브 더 캣, 로그라인, 캐릭터의 결핍과 욕망, 트라우마와 반복 행동, 클리프 행어. 만화 작법서에 수십 년째 실려온 이 개념들이 AI 시대에 오히려 더 절실해졌다. AI는 무엇이든 그려주기 때문에 무엇을 그려달라고 할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격차가 그대로 결과물의 격차가 된다.
 

배경 설정 하나만 봐도 그렇다. AI에게 ‘예쁜 방’을 요청하는 것과 ‘오래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인물이 사는 좁고 어수선한 방’을 요청하는 건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교실이라도 일반고와 예술고의 공기는 다르다. 배경은 장식에 그치지 않고 세계관을 설명하고 캐릭터의 삶을 보여준다. 참여자들은 AI가 이미지를 만들어준다는 사실보다,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익혔다.
 

이 철학을 가장 구체적으로 구현한 것이 글 콘티 프롬프트였다. AI에게 ‘웹툰 만들어줘’라고 던지는 대신 70컷 각각에 대해 화면 크기와 구도, 등장인물, 행동과 표정, 배경과 상황, 대사, 내레이션과 효과음, 다음 컷으로 이어지는 연출 의도까지 항목별로 구조화해 전달하게 했다. 마지막 3∼5컷에는 클리프 행어를 설계하게 했다. 전통적인 만화 콘티의 문법을 AI가 처리할 수 있는 형식으로 번역한 것이다. 평소 강의에서 해온 말을 스터디에서도 반복했다. AI에게 만화를 만들어달라고 하지 말고, 내가 설계한 만화의 한 컷을 연기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한 땀 한 땀인가, 자동화인가

스터디 중반부터 하나의 질문이 채팅방을 지배했다. 한 땀 한 땀 할 것인가, 자동화할 것인가. 마침 AI toon-comic 스킬 베타 테스트가 병행되면서 이 질문은 실전이 되었다. 콘티 생성부터 컷 이미지, 말풍선, 효과음, 편집까지 자동으로 이어주는 워크플로우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필자도 직접 실험했다. 콘티까지 자동화하고, 프롬프트가 지시하는 대로 이미지를 생성했다.
 

결과는 어땠나. 마음에 드는 컷은 그대로 쓰고, 마음에 들지 않는 컷은 다시 만들었다. 이 한 문장에 현재 AI툰 자동화의 상태가 압축돼 있다. 자동화는 분명 편하다. 그런데 의도와 다르게 나온다. 좋은 컷과 어긋난 컷이 뒤섞여 나오고, 그것을 골라내고 고치는 일은 고스란히 작가의 몫으로 남는다. 어떤 순간에는 처음부터 손으로 하는 편이 빠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베타 테스트에서 확인한 기술적 병목도 분명했다. 가장 큰 벽은 캐릭터와 배경의 일관성이다. 컷마다 주인공의 얼굴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같은 공간이 다른 공간처럼 그려진다. 캐릭터 시트, 스타일 템플릿, 참조 이미지, 배경 시트 같은 장치들이 계속 논의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타 테스트 후반에는 표정 연기 토글, 포즈 러프 스케치 기반 컷 수정, 배경 시트를 통한 공간 일관성, 의상 일관성, 액션 연출 모드 같은 기능이 빠르게 추가됐다.
 

도구는 매주 진화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최종 판단의 자리는 비워지지 않았다. 편집과 발행 단계에서도 새로운 과제가 드러났다. 이미지를 생성하는 일과 웹툰으로 ‘읽히게’ 편집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컷 간격, 세로 스크롤의 호흡, 말풍선 배치, 파일 크기와 변환, 플랫폼 업로드 조건. 발행 직전에야 마주치는 이 실무들은 별도의 교육이 필요할 만큼 두터웠다.
 

15일의 실험이 도달한 결론은 이렇다. 현재 단계의 AI툰 제작에서는 완전 자동화보다 인간 개입형 반자동 워크플로우가 현실적이다. AI가 제안하고, 사람이 판단하고, 다시 고치는 구조. 자동화는 제작 시간을 줄여주는 강력한 도구로 작동하지만 캐릭터의 의도, 이야기의 방향, 컷의 완성도, 편집의 호흡을 결정하는 자리에는 여전히 창작자가 앉아있어야 한다.
 

일상의 이야기가 ‘툰’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여름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기술 바깥에서 일어났다. 베타 테스터 방의 공기가 바뀐 것이다. 스킬을 만든 조남경 작가님이 이 변화를 정확히 포착했다. 처음엔 다들 “오, 이게 되네?”하며 신기해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스타일리스트를 들여다보며 “이 스토리에는 이 그림체가 어울릴 것 같다”며 진지하게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인물이 계속 바뀌네”, “포즈가 좀 이상한데”하던 사람들이 요즘은 “다음 편 언제 나와요?”를 묻는다.
 

결함은 여전히 남아있고 지적도 계속된다. 다만 시선이 결함에서 이야기로 옮겨갔다. 기술 시연이 어느 순간 그냥 ‘툰’으로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독자가 다음 편을 기다리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콘텐츠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너무 시시하거나, 너무 개인적이거나, 남들이 안 궁금해할 것 같아 여태 만화가 될 일 없던 이야기들이 하나둘 AI툰으로 만들어져 나오고 있다. 유튜브가 방송국이라면 절대 다루지 않았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하나의 콘텐츠 장르로 만들어준 것처럼. 만화 제작의 문턱이 낮아지면 가장 먼저 문을 넘어오는 것은 화려한 대작에 앞서 이런 작고 사적인 이야기들이다. 필자는 여기에 AI툰의 가장 큰 문화적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가벼운 이야기만 나온 것도 아니다. 스터디에 함께한 김종익 교수의 <황하의 붉은 신부>가 좋은 예다. 가짜 제사에 제물로 바쳐진 소녀가 강 밑에서 수백 년간 희생된 여인들의 진실과 마주하며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를 파헤치는 수묵 호러 사극물. 수묵과 호러와 사극이 겹친 이 기획은 단순한 도구 시연에서 나올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
 

그는 AI로 여러 작품을 빠르게 만들어 보다가 오히려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쳤다고 했다. 제작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가. 제작이 쉬워질수록 질문은 깊어진다. 그가 남긴 통찰 하나를 옮겨 둔다. AI는 빠른 호흡의 표현 도구로는 정말 좋다. 하지만 때로는 기존 방식의 긴 호흡도 함께 가야 한다. 빠른 호흡과 긴 호흡의 병행, 이것이 AI 시대 창작 교육이 잡아야 할 균형이다.
 

물론 과제는 많다. 저작권과 스타일 모방 논란, 창작 노동의 가치, 콘텐츠 과잉 공급 같은 문제들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AI 시대를 밝게만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러나 어둡게만 보는 것도 현장과 맞지 않는다. 방학 내내 스킬을 다듬으며 베타 테스터들과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든 사람이 있었고, 매일 과제를 내며 사람들을 끝까지 데려간 사람이 있었고, 회사 안에서 조용히 다음 가능성을 쌓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변화는 어떻게든 온다. 그 변화의 방향을 만드는 것은 이렇게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스터디가 남긴 것

효과를 정리해 보자. 첫째, 진입 장벽이 실제로 낮아졌다. 그림에 자신이 없던 참여자들이 15일 만에 기획부터 발행 직전까지의 전 과정을 통과했다. 몇 달짜리 여정을 압축 체험한 것만으로도 창작에 대한 감각이 달라진다. 무엇이 쉬운지, 어디서 막히는지, 자신의 강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몸으로 알게 된다.
 

둘째, 역설적으로 판단력의 가치가 올라갔다. AI를 쓰면 결과물이 쏟아진다. 쏟아지는 결과물 앞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을 고르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눈이다. 스터디 참여자들이 공통으로 통과한 훈련은 바로 이 선별의 훈련이었다. 생성은 AI가 해도, 안목은 길러야 한다.
 

셋째, 교육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매일 인증이라는 리듬, 보증금과 가산점이라는 이중 동기 설계, 특강과 베타 테스트가 결합한 공동 실험실 구조. 이 조합은 방학 비교과 프로그램으로, 나아가 정규 교육과정의 한 형태로 다듬을 수 있다. 특히 학생 참여자들이 2학기 수업에서 어떤 과제 수행을 보여줄지가 다음 관찰 지점이다. 방학의 시행착오가 학기의 완성도로 이어진다면, 이 모델은 검증의 첫 관문을 통과하는 셈이다.
 

넷째, 질적 기록이 쌓였다. 스터디를 마치며 참여자들에게 작품 소개, AI로 만화를 만든 소감, 직접 편집과 자동화 스킬을 모두 경험한 뒤의 선택과 그 이유를 청했다. 같은 도구를 쥐고도 사람마다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AI 창작 교육을 설계하는 데 가장 귀한 자료다.
 

교육의 다음 페이지

15일의 스터디가 끝났고 질문은 바뀌었다. 스터디를 시작할 때의 질문이 ‘AI로 웹툰 제작 교육이 가능한가’였다면, 끝낼 때의 질문은 ‘AI 시대의 만화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가 되었다. 답의 윤곽은 보인다. 도구 사용법의 비중은 생각보다 작다. 도구는 매주 바뀌고, 오늘 외운 프롬프트 요령은 다음 업데이트에서 낡은 것이 된다. 오래 남는 것은 이야기를 설계하는 힘, 캐릭터를 세우는 힘, 컷과 컷 사이의 호흡을 읽는 힘이다. 수십 년 된 작법 이론이 생성형 AI 앞에서 다시 젊어지는 광경을, 필자는 이번 여름 내내 지켜봤다.
 

다음 단계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 컷 정리, 파일 변환, 포맷 조정처럼 제작 과정에서 반복되는 잔업들은 창작자가 직접 작은 도구를 만들어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AI로 만화를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창작자가 자신의 제작 환경을 직접 설계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 그것이 이 실험의 다음 페이지다. 70컷을 완성한 15명의 현장 수료자에게, 그리고 자정 직전에 과제를 올리며 여름 밤을 버틴 모든 참여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AI는 이번 여름 우리에게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러나 무엇을 그릴지 결정한 것은 끝까지 사람이었다. 만화 교육이 지켜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그 15일이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김한재 

· 강동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콘텐츠과 교수 

· 애니메이션산업, 캐릭터산업, 만화산업 백서 집필진 

· 저서: 생성형 AI로 웹툰 · 만화 제작하기 (2024)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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