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익숙한 사물이 생명력을 얻는 게 스톱모션만의 매력

Interview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3-01-05 08:00:42

 

1977년 <콩쥐 팥쥐> 이후 45년 만에 탄생한 한국 스톱모션 장편 애니메이션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이 1월 개봉한다. 3년 3개월에 걸쳐 마침내 완성된 이 작품의 각본과 연출은 우리나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비전을 제시하는 제작사 스튜디오요나의 수장 박재범 감독이 맡았다. 박 감독은 한 땀 한 땀 정성을 쏟는 장인 정신으로 경이로운 대자연과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독보적인 작품을 탄생시켰다.

개봉 소감이 궁금하다 작품이 완성된 건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스케일이 큰 영화들과 함께 당당히 개봉하는 게 그저 장하고 감격스럽다. 함께 노력해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이 최대한 많은 관객과 만났으면 좋겠다.


작품을 간략히 소개해달라 눈과 얼음의 땅에서 순록과 함께 살아가는 소녀 그리샤는 원인 모를 병에 걸린 엄마를 살리기 위해 전설로 전해오는 숲의 주인을 찾아 떠난다. 북극성을 따라 땅끝에 다다른 그리샤 앞에 붉은 곰이 나타나고, 그녀를 깊은 동굴 속 마법의 숲으로 안내해 선택받은 존재임을 알려준다. 주인공 그리샤가 동생 꼴랴, 반려 순록 세르데토와 함께 전설 속 숲의 주인을 만나러 가는 과정이 재미를 주고 가족 간의 사랑, 자연과의 공생이라는 가치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작품에 담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어떤 메시지를 명확히 규정하기보다 극 중 인물들이 내린 선택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 관객의 공감을 얻고자 했다. 그리샤가 전설을 따라 붉은 곰을 찾아 떠나는 결정이 누군가에겐 터무니없이 허황된 일일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그리샤의 선택이 용감하고 순수하다는 데에 동의할 수 있다면 관객도 함께 모험을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툰드라 설원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는? 대학생 때 본 SBS 다큐멘터리 최후의 툰드라가 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혹독한 자연에 어떻게든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린아이처럼 맑은 모습, 순록의 생고기와 피를 마시는 모습은 형용하기 어렵지만 무척 아름다웠다. 전작 스네일 맨은 사막을 배경으로 했는데 문득 이와 정반대의 공간인 설원이 떠올랐고 잊고 있었던 툰드라가 다시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래서 흰 설원 위에 떨어진 붉은 핏방울의 이미지를 시작으로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이란 작품을 만들게 됐다.


 

스톱모션 기법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좋아서’ 다. 스톱모션 기법만의 질감과 따스함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직접 만지고 느끼고 교감할 수 있다는 점이 안도감을 준다. 또 스톱모션은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보여준다. 캔에 눈 모양만 만들어 움직여도 애니메이션이 된다. 천이 바다나 오로라가 되기도 하고 스티로폼이 눈과 산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물의 형태와 속성이 애니메이션 안에서 새롭게 생명력을 얻는 것, 그것이야말로 스톱모션만의 대체 불가능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작 과정에서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그러다 촬영 막바지에는 이제 끝낼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제작진 모두 약간의 광기에 휩싸여 힘든 줄도 모르고 마지막까지 남은 혼을 불태웠던 것 같다.(웃음) 함께한 이들의 성격상 작업을 끝내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회포를 거나하게 풀 것 같지도 않아서 촬영이 끝나기 한 달 전부터 집에서 이런저런 식재료를 챙겨 와 요리해 먹고 추억의 영화를 보거나 유니폼도 맞추면서 소소한 이벤트로 하루하루를 가득 채웠다. 여러모로 크랭크업을 앞둔 한 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품들을 아우르는 자신만의 세계관은? 나도 가끔 궁금하다. 왜 이렇게 고생해가며 이야기를 만들까.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 세상에. 결국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인 것 같다. 그때그때 느끼는 큰 감정과 집착은 어떻게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본성이지 않을까 한다. 그런 면에서 난 너무 익숙해서 쉽게 잊히는 보편적인 가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준비하거나 생각하고 있는 차기작이 있나? 그리샤를 연기한 배우 겸 애니메이터 이윤지 씨의 장편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현대 판타지 가족 드라마다. 이번에는 산을 배경으로 하는데 기획한 걸 보면 재미있다. 그동안 너무 무거운 이야기들을 한 것 같아서 이번 작업이 특히 기대된다.
 

관객들에게 한 마디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받고 있는 요즘이 그리샤와 함께 여정을 떠나기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싶다.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에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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