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시청률 0%대. TV 애니메이션의 현주소다. 그럼에도 제작사들은 TV로 달려간다. 여전히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2세로 제한한 암묵적인 시청 연령 프레임은 하이 타깃 작품 등장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오늘도 애증의 눈길로 TV를 노크하는 제작사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본다.
작품 알리려면 TV 편성은 필수작품 완성 시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오면 마케팅팀은 슬슬 분주해진다. 최우선 목표는 지상파 방영. 지상파는 매년 애니메이션을 공모한다. 저마다 공모 횟수나 선정 편수는 다르다. 공적 책임이 강한 KBS와 EBS가 주기적으로 공모를 진행하는 편이다.
방송사들은 공모를 통해 선정한 작품을 편성하고, 그 대가로 제작사에 방영권료를 지불한다.
최근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가 국회 간담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지상파 방영권료는 500∼1,100만 원, 종합편성채널은 160∼200만 원 수준이다. 이는 30분 단위 지급액으로 KBS가 가장 높다. 10분짜리 에피소드 25편을 만들었다고 가정할 때, 30분 분량으로 묶으면 8편이 나오니 최대 8,8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TV시리즈 애니메이션은 통상 편당 제작비가 1억 원에 이르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25억 원의 제작비 중 일단 3.5% 정도는 회수하는 것이다.
A제작사 관계자는 "액수는 적더라도 일단 돈을 받아 자금을 돌리고 작품도 알려야 하니 TV 편성은 필수"라고 했다.
방송사들이 애니메이션을 사는 건 애니메이션 방송 총량제(쿼터제) 때문이다.
쿼터제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지속성과 시장 진입을 보장하는 핵심 제도다. 사실상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을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안전판과 같다. 2005년부터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의 진흥을 목적으로 방송법 시행령 및 편성 고시 개정을 통해 시행 중이다. 2012년에는 적용 대상을 종편 채널과 애니메이션 전문 케이블 채널로 확대했다.
쿼터제는 방송 채널의 연간 전체 애니메이션 방송 시간 중 8 ~ 45% 이상 범위에서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을 편성하는 내용(국산 애니메이션 의무 편성)과 방송 채널 전체 방송 시간의 0.3% ~ 1% 이상을 신규 제작한 국내 애니메이션으로 편성하는 내용(국산 신규 애니메이션 의무 편성)으로 구성돼 있다. 국산 애니메이션의 의무 편성은 1998년부터, 신규 제작 국산 애니메이션의 의무 편성은 2005년부터 시행했다.
"방송이라면 무조건 많이 나가는 게 최고"각고의 노력 끝에 지상파 편성을 확정했다면, 다음은 케이블 채널로 전화를 돌릴 차례다. 공모 결과를 보고 케이블 채널에서 연락이 먼저 올 수도 있고 제작사가 제안할 수도 있다.
케이블 채널 역시 쿼터제를 적용받는다. 정부로부터 방송 허가 재승인을 받으려면 국산 애니메이션이 필요하다. 나온 지 2년 이내인 국산 신작을 많이 틀어야 가점을 받는다.
하지만 지상파와 비슷한 수준의 방영권료를 기대하는 건 금물이다. 가장 많아야 500만 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B제작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케이블 채널 중에서 맨 먼저 공개하는 작품에 방영권료를 많이 줬는데 이제는 지상파를 통틀어 처음 공개하는 작품이어야 그나마 높이 쳐주는 흐름"이라며 "그런 작품을 틀어야 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속내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케이블 채널은 본방에 이어 재방, 삼방도 한다. 주중 시청률이 잘 나오는 오전 시간대에 편성한 뒤 본방이 끝나면 오후 시간대나 주말에 재방송한다. 이건 시청률이 잘 나올 때 가능하다. 반응이 저조하면 금방 내린다. 재방, 삼방은 방송사 재량이다. 할 때마다 비용을 주는 것도 아니다.
전작의 시청률이 비교적 높았다면 "후속작 나오면 꼭 연락 달라"며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면 방영권료를 올려 받을 지렛대가 생겨 제작사가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할 수 있다. 반면 시청률이 낮으면 방영권료를 받지 않고 영상을 넘기기도 한다. 어차피 돈을 받고 팔거나 거절당하는 것 둘 중 하나니, 마케팅을 위해 무상 방영을 택하는 것이다. 케이블 채널에 많이 노출될수록 OTT에 들어갈 틈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노출이 많아지고 여기저기 얘기가 돌아야 넷플릭스 같은 곳에도 제안해볼 기회가 오니 방송은 무조건 많이 나가는 게 최고"라고 강조했다.
2차 사업으로 이어지게 하는 핵심 고리유튜브와 OTT 영향력이 커지면서 제작사의 고민도 깊어진 적 있었다. 더 이상 TV에만 머물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의 답을 찾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는 지금의 구도를 바꾸긴 어렵다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어쨌든 돈과 노력을 쏟아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흥행 여부는 미지수라는 건 어느 플랫폼이나 똑같다는 판단이었다. 아예 기획할 때부터 유튜브, OTT, 극장판 등 플랫폼에 맞춘 전략을 세워 사업화 계획까지 치밀하게 준비한다면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다. 그러나 플랫폼의 성격보다 중요한 건 무엇보다 콘텐츠의 힘이라서 본질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C사 관계자는 "매체 영향력을 떠나 콘텐츠가 성공하려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며 "아무리 노출을 많이 해도 결국 재미없는 건 묻힐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도 TV의 힘은 굳건하다. 방송사 브랜드는 시청하는 아이와 부모에게 신뢰감을 주는 강력한 요소다. 작품을 공개하는 론칭 플랫폼으로서의 상징성과 파급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제작사로서는 TV 방영 실적이 있어야 해외 수출, VOD 판권 계약, 완구, 뮤지컬 등 2차 사업으로 확장할 물꼬를 틀 수 있다. 결국 TV 방영은 2차 사업으로 이어지게 하는 핵심 고리라 할 수 있다.
12세 시청연령 프레임 여전, 다양성 가로막아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인지도를 빠르게 쌓기에는 아직도 TV가 유리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그늘도 존재한다.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 IPTV에서는 12세로 제한한 시청연령 프레임이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8∼14세를 메인 타깃으로 두고 온 가족이 볼 만한 애니메이션을 주로 편성한다. 15세 이상이 보는 하이타깃 작품이 진출할 길은 사실상 가로막혀 있다. 방송사업자들은 겉으론 15세 이상 작품도 살 수 있다고 말하지만, 경쟁 프로그램이 많고 그만큼 광고도 비싼 시간대라 편성을 꺼린다.
이는 키즈 장르에 머물고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 시청층의 연령대를 높여 체질을 바꾸고 제작 활성화를 유도하려는 정부의 움직임과는 정반대라서 아이러니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청장년층 애니메이션 제작을 독려하지만, 정작 만들어도 틀 곳이 없다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갈 곳은 극장 또는 OTT다. 하지만 모든 작품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처럼 흥행할 순 없다. 그러니 도전보다는 안정을 '선택당하고' 있는 셈이다.
배급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방송사들이 전 연령층 작품을 좋아하지, 15세 이상 작품을 사는 건 본 적이 없다"며 "이러니 더욱 키즈 애니메이션만 만들게 되는 순환 고리가 깨지겠나"라고 푸념했다.
이어 "그나마 위험 부담을 줄이고 인지도를 쌓아가며 안정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발판을 마련하려면 TV를 활용하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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