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케데헌 앓이’ 중

Special Report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5-08-04 11:00:24

한반도를 뒤덮은 폭염만큼 세계를 뒤덮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이하 케데헌)의 열기도 뜨겁다. K-팝스타 루미·미라·조이가 화려한 무대 뒤에서 세상을 지키는 숨은 영웅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미국의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했지만 사실적으로 묘사한 한국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세계는 지금 ‘케데헌’을 앓는 걸까, 아니면 K-컬처를 앓는 걸까.



넷플릭스“역대 최고 기록 작품 전망”
넷플릭스는 7월 23일 SNS에 “케데헌이 넷플릭스 영화 중 최초로 공개 5주 차에 시청률 최고치를 갱신한 작품이 됐다”며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한 애니메이션이자 전체 콘텐츠 중에서도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 작품이 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에 따르면 케데헌은 7월 셋째주(7월 14∼20일) 기준 2,580만 시청 수(전체 시청 시간을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전체 콘텐츠 부문 1위를 차지했다.


6월 20일에 공개한 케데헌은 첫날부터 17개국 넷플릭스에서 시청 순위 1위에 오르며 글로벌 흥행을 예고했다. 6월 셋째 주 920만 시청 수로 영어권 영화 2위에 오른 이후 7월 첫째 주 2,270만, 둘째 주 2,420만 시청 수를 찍으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통상 시간이 흐를수록 시청 수가 감소하는 것과 달리 매주 자체 최고 기록을 새로 쓰면서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것.

 


OST 인기도 연일 뜨겁다. 7월 22일(현지 시간) 미국 빌보드 차트에 따르면 극 중에서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부른 OST 8곡이 동시에 ‘핫 100’에 진입했다. 헌트릭스의 골든(Golden)은 지난주보다 2계단 올라 4위, 사자보이즈의 유어 아이돌(Your Idol)도 2계단 올라 14위에 랭크됐다.

 

헌트릭스의 하우 잇츠 던(How It’s Done)은 23위, 사자보이즈의 소다팝(Soda Pop)은 25위, 헌트릭스 루미의 프리(Free)는 41위, 헌트릭스의 왓 잇 사운즈 라이크(What It Sounds Like)는 43위, 헌트릭스의 테이크 다운(Take down)은 51위에 올랐다. 걸 그룹 트와이스의 정연·지효·채영이 부른 테이크 다운도 90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곡이 포함된 케데헌 OST는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5위를 유지했다.

 

 

굿즈 품절, 배경지·소품도 덩달아 인기
작품에 등장한 캐릭터와 배경, 소품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조선 시대 민화 작호도에서 영감을 받은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 굿즈를 구하는 건 요즘 하늘의 별 따기다. 사자보이즈의 리더 진우의 반려동물로 걸 그룹 헌트릭스의 루미와 진우 사이를 오가는 전령인 더피 인형은 물론 국립중앙박물관이 판매하는 작호도 배지는 연일 품절 사태를 빚고 있다.

 


한밤중에 루미와 진우가 만나 얘기를 나누는 한양도성 낙상공원 성곽길과 북촌 거리, 헌트릭스의 무대가 펼쳐진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뮤직비디오가 나온 삼성역 대형 3D 전광판을 비롯해 남산타워와 롯데타워, 한강을 배경으로 한 야경, 심지어 루미가 치료를 위해 찾았던 한의원의 실존 배경지인 서울한방진흥센터에도 케데헌 팬들의 성지 순례가 이어지고 있다. 또 주인공들이 먹은 과자, 라면, 김밥, 국밥 등도 해외 팬들 사이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인기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인기 요인은 K-컬처의 힘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케데헌의 인기 요인은 K-컬처에 대한 관심으로 압축할 수 있다.


영국 BBC는 7월 16일(현지 시간)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이유’란 기사에서 “케데헌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K-팝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절묘하게 융합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BBC는 “이 영화에서 K-팝은 심장과 같다.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초자연적 무기가 될뿐더러 각각의 오리지널 트랙은 감동적인 순간을 더욱 증폭시킨다”며 “주인공들의 칼군무, 팬 사인회, 화려한 응원봉, 한국어 플래카드 등 K-팝의 독특한 문화를 생생히 담아내 시청자들을 팬덤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고 분석했다.

 


김영대 음악 평론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애니메이션은 낯선 문화를 주류 플랫폼에 소개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케데헌은 K-팝에 거의 관심이 없거나 단순히 호기심만 있는 사람들에게도 어필한다”고 했다.

 

 

인기에 기여한 또 다른 요인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K-팝, K-영화, K-드라마는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서구 시장에서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케데헌은 한국 문화의 핵심 요소인 음식이나 식습관을 중심으로 한국인의 일상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남산타워, 한강, 명동, 강남, 옛 성곽, 공중목욕탕 등 서울의 상징적인 장소와 장면을 충실히 포착해 보여준다.

 


특히 걸 그룹 헌터엑스가 칼과 부채를 사용하는 모습은 무당을 떠올리게 하고 사자보이즈는 저승사자처럼 차려입은 악령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당산나무, 도깨비에도 한국의 무속 신상이 깃들어 있다. 청록 산수화풍의 일월오봉도를 무대 배경으로 쓰고 수호신과 행운을 상징하는 호랑이와 까치는 신 스틸러로 등장한다.


제작진의 이러한 진정성은 한국어 발음에 맞춰 등장인물의 입 모양을 디자인한 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매기 강 감독은 넷플릭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한국어처럼 들리도록,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반응 역시 한국어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웹툰처럼 역동적이면서도 스피디한 연출이 극적 몰입감을 높였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Variety)는 ‘케데헌 리뷰’기사에서 “제작진은 웹툰과 만화(한국의 그래픽 노블)에서 영감을 얻어 부드러운 움직임보다는 역동적인 실루엣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버라이어티는 “과거 스피드레이서나 파워퍼프걸 같은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들 때 제작비 절감을 위해 시행했던 게 케데헌에서는 아시아 색채가 더해지고 귀여운 만화풍의 요소로 더욱 풍성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설명이 가득한 1막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끝낸다”며 “민첩하게 장르를 넘나드는 이 영화는 K-팝을 배경으로 시청자들에게 한 편의 뮤지컬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덧붙였다.

 

매기 강 감독은 케데헌의 인기비결은 곧 K-컬처 파워에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녀는 “요즘 K-팝이나 K-뷰티처럼 뭐든 K가 앞에 들어가면 미국인들은 열광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문화가 정말 훌륭하고 이제는 전 세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문화라고 느껴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적인 영화를 미국 회사가 제작했다는 사실은 한국 문화의 강력한 힘을 나타내는 증거와 같다”며 “한국 문화가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지, 한국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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