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관 88] 김보솔 감독, 감독이면 고집이 있어야 해요

Interview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5-04-29 08:00:43

장편 애니메이션 <광장>의 이야기 무대는 북한이다. 평양에 거주 중인 스웨덴 외교관 이삭 보리와 그의 연인 서복주,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통역과 리명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끝에는 외로움이 자리한다. 김보솔 감독은 70여 분 동안 빈틈 없는 불안과 긴장 속에서 찰나에 스쳐 지나는 외로움이란 감정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그들에게 외로움은 곧 자유이자 누리기 힘든 사치였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어릴 때부터 영화광이었다. 영화과에 들어갔더니 그간 내가 봤던 영화만 있는 게 아니어서 더 재밌었다. 미학을 배우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예술 장르가 바로 영화라고 느꼈다. 난 계속 뭔가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진학해 5년 11개월 동안 졸업 작품을 준비한 끝에 마침내 올해 졸업했다.(웃음)

 

▲<홈>


데뷔작 <홈>은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나?

홈은 사고를 당한 후 주인에게 돌아가려는 반려로봇 롬과 인간을 불신하는 유기견 모글이의 동행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네 번이나 파양당해 보호소에서 우울증에 걸린 개에 관한 기사를 읽고 유기견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구상 중인 다른 이야기의 소재였던 반려로봇을 유기견과 합쳐 시나리오를 짰다. 압구정에서 처음 상영했을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소리가 잘 나오는지, 영상의 색감이 괜찮은지를 보는 기술 시사회를 새벽에 끝내고 나서 펑펑 울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집을 부리지 못한 데 대한 후회와 속상함에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그게 큰 교훈이 됐다. 연출자가 가져야 할 고집을 배웠다. 고집을 갖고 만든 작품과 아닌 작품의 만족도와 완성도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걸 깨달았다. 광장은 굴하지 않고 고집을 부려 만든 작품이다.

 

 

<광장>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북한에서 근무한 스웨덴 1등 서기관이 우리나라 취재진과 가진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가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 자전거를 타고 아무도 없는 광장을 빙빙 도는 거라고 말
한 대목이 인상 깊었다. 이전부터 북한의 정치 실상과 생활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그걸 읽고 나서 선명한 이미지가 떠올라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미디어가 보여주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시나리오 초고를 쓸 때 키워드는 낯선 환경에서 겪는 인간의 외로움이었다. 쓰다 보니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실제 탈북민 중 정보기관에서 일했던 분을 만나 이것저것 물었더니 외로울 새가 없었다고 하더라. 불안하니까. 가짜란 걸 다 알고 있지만 진짜인 것처럼 행동해야 하니까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그 말에 시나리오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외로움을 느끼는 주체가 이삭 보리에서 리명준에게 넘어갔다. 그가 외로움을 느낀 순간이 곧 자유를 느낀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찰나를 영화에 담아보려고 했다. 외로움을 억누르는 불안이란 거대한 장벽에 실금을 내는 거다. 명준이
자유를 느끼는 순간을 위해 달려가는 장면이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다.

 

▲<광장>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인가?

딱히 결심한 적은 없다. 영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옮겨 간 건 자연스러웠다. 대학 졸업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다가 찾은 선택지가 애니메이션이었다. 영화과에서 스토리가 있는 2D 애니메이션을 졸업 작품으로 만든 건 아마 내가 처음이었을 거다. 졸업 후 전시 기획 회사에 다니면서도 창작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가난해질 용기가 있어야겠다는 결심이 서자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진학을 준비했다. 사실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 방식이 영화든 웹툰이든 소설이든 애니메이션든 상관없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얻는 즐거움은?

연출가라면 모두 글을 쓸 때 이미지를 떠올릴 거다. 특히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면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릴 것이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스토리보드에 처음 막 쏟아낼 때가 가장 즐겁다. 그 이후로는 고통스럽다.(웃음) 연출자는 건축설계사와 같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받은 결과물을 결합할 때 컷과 컷이 잘 붙고, 신과 신이 자연스럽게 잘 넘어갈 때, 정말 오차 없이 잘 맞물려 완벽히 합성될 때 큰 희열을 느낀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장르적 특성을 앞세우기보다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이제는 연출자라는 직업이 생겼으니 앞으로 장편 연출을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아무리 못해도 장편작 2편은 만들어봐야 스스로 감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햇병아리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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