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2-08-02 08:00:04
공공지원·민간투자 위축
관련업계에 따르면 애니메이션산업의 위기가 표면화된 건 서울산업진흥원(SBA)이 애니메이션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다.
SBA는 콘텐츠본부의 예산을 지난해 40억 원에서 올해 12억 5,000만 원으로 대폭 삭감했다. 이에 따라 웹, 상업 애니메이션 제작을 직접 지원하던 사업 대부분이 사실상 중단됐고 3억 원의 예산으로 매년 10편을 만들어내던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 사업마저 끊겼다.
SBA는 지원 중단이 아니라 지원하는 방식을 변경하고 대상도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웹소설, 웹툰, 드라마, 캐릭터 등으로 넓혀나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제작비 지원이 절실한 업계는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지원사업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공부문의 지원 축소에 대한 우려는 올 초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애니메이션 관련 업무를 방송영상 관할 부서로 이첩하면서 조금씩 높아지고 있던 상황. IP산업에서 비중이 컸던 애니메이션이 드라마, 예능 등 상대적으로 시장의 수요가 높은 영상콘텐츠에 밀려 찬밥 신세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A제작사의 한 고위 간부는 “실제 콘진원의 애니메이션 제작지원 규모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 예전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 만들 수 있는 작품들을 요구하는 추세” 라고 전했다.
그는 “결국 투자 대비 결과물의 성과가 낮다는 인식 때문” 이라며 “지금까지 자국 문화 콘텐츠 보호 육성이란 명분으로 지원사업이 유지되고 있지만 이제는 이러한 명분도 점차 힘을 잃고 있다” 고 덧붙였다.
국내외 민간 분야의 투자도 위축되면서 애니메이션업계에 드리워진 그늘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구독자 감소와 주식가격 폭락 등의 위기를 맞은 글로벌 OTT 넷플릭스는 지난 4월 애니메이션 사업을 이끌던 필린다(Phil Rynda) 디렉터를 비롯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직원 70명을 해고했다. 또 윙스 오브 파이어, 펄, 더 트위스트, 본 등 애니메이션 10여 편의 제작도 취소했다.
그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주력했지만 실적과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잠재력보다는 시장성이 높은 콘텐츠에 집중하는 한편, 히트 콘텐츠를 여러 영역으로 확대하는 프랜차이즈 전략을 추구하는 양상이다.
국내 OTT들의 애니메이션 투자는 더욱 인색할 수 밖에 없다. 구독자를 유입해 존립기반을 마련하고 흑자로 전환하기 위해선 시청자들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을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부 제작사를 중심으로 시리즈 제작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사업을 중단한 사실이 전해지고, 채용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어 수개월째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프로젝트 추진이 지연되거나 웹툰이나 게임, 메타버스 등 다른 산업 분야로 진출해 살 길을 찾는 곳도 늘면서 업계의 긴장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B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제작인력이 빠져나간 건 수년 전부터 있어왔지만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사업부서에서 인력이 빠져나가고 완구도 예전만큼 팔리지 않아 도매상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건 정말 심각한 상황” 이라며 “애니메이션산업이 지금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막다른 길로 내몰리고 있다” 고 말했다.
업계 “산업 육성 위해 투자 강화해야”
이에 업계는 애니메이션산업 육성을 위해 지금보다 투자를 더욱 강화하고 지원제도도 확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또 OTT 플랫폼이 수익의 일부를 애니메이션 제작에 재투자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 민간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6월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과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등과 함께 마련한 정책토론회에서 박재우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텍 전공 교수와 변권철 모꼬지 대표, 황수진 로커스 애니메이션산업본부장, 이용호 애니메이션산업법개정추진위원장은 토론자로 나서 이 같은 의견을 정치권과 정부에 건의했다.
김 의원은 “OTT 등장으로 인한 산업 환경 변화,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투자심리 위축 등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며 “앞으로 K-애니메이션을 지속가능한 대표 한류 콘텐츠로 육성하고 관련 산업을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키워내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토론회에서 얻은 다양한 의견을 취합해 K-컬처의 초격차 산업화, 콘텐츠 관련 예산 지원 확대, 콘텐츠 창작자 권리보호 강화 및 제작자 지원 확대 등 새 정부 국정 과제와 공약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 고 했다.
김탁훈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
오징어게임과 아기상어 중 누가 돈을 더 많이 벌었는가?
정책토론회 도중 참석한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참석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애니메이션 지원 관련 예산규모 등에 대해 묻고 “올해 애니메이션 예산으로 최소 200억 원을 확보하겠다” 고 약속했다. 권 대행으로부터 이 같은 다짐을 이끌어내 토론회장의 스타로 떠오른 김탁훈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애니메이션을 보는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고 강조했다.
마이크를 잡은 이유는? 토론회에서 여러 주제가 다뤄졌는데 사실 메시지의 방향성이 흐트러지지 않고 제대로 잘 전달되려면 한두 가지 정도의 주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또 토론이라지만 일방적으로 진행됐던 부분이 조금 답답했다.
무엇을 건의하고자 했나? 우선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자주 바뀌니 줄곧 얘기하고 요청한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현안을 챙겨줬으면 한다. 다른 하나는 애니메이션을 주로 영화와 비교하곤 하는 데 영상판매 매출 규모만 보고 재단해버리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오징어게임과 아기상어 중 어떤 콘텐츠가 매출을 더 많이 올렸겠는가? 아기상어다. IP를 활용한 상품 매출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캐릭터·애니메이션이 콘텐츠산업은 물론 제조업을 활성화하는 데 더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예산 증액이 실현될까? 올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애니메이션 분야 예산이 200∼300억 원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년에 500억 원 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을지 알 순 없지만 당·정·대통령실이 의지를 갖고 추진할 것인지 앞으로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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