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5-05-05 11:00:23
고전 호러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19년 만에 애니메이션으로 부활했다. AI 솔루션 기업 큐브베리가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든 애니메이션 <전설의 고향-구미호>가 5월 5일 낮 12시 10분에 KBS 1TV에서 방송한다. 이 작품은 제작 공정을 자동화한 AI 툴로 만든 최초의 방송용 애니메이션이어서 화제가 됐다. 이진서 큐브베리 대표는 “서사가 있는 긴 호흡의 영상을 AI로 만든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첫 작품으로 <전설의 고향>을 선택한 이유는?
KBS에서 27년간 PD로 근무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납량 특집으로 부활했던 전설의 고향 조연출을 맡은 적이 있는데 꽤 인기 있었다. 수많은 미니시리즈나 드라마를 연출했지만 전설의 고향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보기 드문 공포물이어서 그만큼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다고 할까.
PD 출신이라면 외주 제작사를 차리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AI 솔루션 회사를 왜 창업했냐면, 사람이 직접 출연하고 모든 걸 촬영하는 프로세스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고 있다. 10편 만들면 8편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는 지경이다. 그래서 적은 제작비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고 싶었다. AI는 그런 생각을 실현시켜 줄 최적의 도구였다. PD 경험을 바탕으로 도전해 볼 만한 장르라면 애니메이션이 제격이라고 보고 AI 기술력을 갖춘 회사와 제작 공정을 자동화한 애니마이(Anim AI)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를 실증하려면 직접 작품을 만들어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한국전파진흥협회의 AI 미디어 활성화 지원사업에 응모해 작년 12월 말에 완성했다.
실사 영상을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한 건가?
원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어린이 시청자를 타깃으로 각색하다 보니 기존 영상을 활용할 수 없어서 그림을 전부 새로 그렸다. 움직임도 모두 AI가 만들었다. 두 장의 이미지를 주면 하나의 움직이는 컷을 생성하는 방식이다.
KBS의 반응은 어땠나?
기존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품질이 높진 않지만 방송에 내보내도 괜찮은 정도란 반응이었다. 다만 작년에 완성한 결과물을 지금 이 순간의 눈높이로 본다면 미흡하게 보일 수 있다. 제작비가 적고 기간도 짧고 리소스도 부족해 이 정도에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우리도 아쉬웠다. 그러나 중요한 건 애니마이의 진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거다. 그땐 되지 않았거나 아예 없었던 기능이 현재 버전에서는 작동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어 우리도 놀랍다.
제작 과정에서 드러난 보완점은?
연출자의 의도대로 그림을 움직이게 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컷은 연결할 수 있으나 움직임이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작화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웠다. 서사가 있는 극이라면 이야기의 연결성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를 AI로 100%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또 연결성, 움직임, 조명, 색, 톤, 연기, 감정 등이 모두 연출 요소인데 작년 버전으로는 세부적인 연출이 쉽지 않았다. 컷과 컷 사이를 채우는 건 AI가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프레임 사이에도 연출자의 의도가 있는데 이걸 이해하지 못하더라. 그래서 다른 여러 솔루션을 반복적으로 활용하거나 명령어를 바꿔가며 수정을 거듭했다. 전 공정의 자동화가 목표였지만 효율성이 떨어졌다. 작년에 시작할 때 기성 제작사들이 움직임을 제대로 낼 수 없어 불가능할 거라고 했는데 아직까지는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한다. 현재로선 연결성과 움직임, 일관성 문제를 AI가 다 해결할 순 없다. 짧은 영상은 되지만 긴 호흡의 영상은 어렵다. 그럼에도 기존 솔루션으로 어디까지 되는지 테스트해 보고 어떤 쪽으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특히 완벽한 서사를 가진 25분짜리 영상의 절반 이상을 AI로 만든 작품은 전설의 고향이 처음이어서 의미가 크다고 자부한다.
<전설의 고향>을 시리즈로 만들 예정인가?
그렇다. 현재 덕대골 에피소드를 만들고 있다. 다리가 잘린 처참한 모습의 귀신이 처녀를 쫓아가면서 “내 다리 내놔”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는 모델링, 리깅을 모두 AI로 처리해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겠다. 모든 움직임을 AI에 지시하는 게 어려우니 캐릭터와 모션 데이터를 AI로 만들어 언리얼 엔진에서 불러와 연출해 볼 생각이다. 나머진 모두 AI로 제작한다. 대형 장기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공포 장르의 대가로 꼽히는 감독 8명이 자신만의 색깔로 각색한 리부트 버전의 전설의 고향을 선보이려고 준비 중이다. 성인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에 공개할 계획이다. 현재 구로사와 기요시, 미이케 다카시, 나카타 히데오, 시미즈 다카시 감독 등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관심이 높다. 쟁쟁한 감독들이 만든 전설의 고향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크다. 전설의 고향을 한국판 ‘러브, 데스, 로봇’처럼 만들고 싶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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