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4-06-05 08:00:36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진행한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사업 심사와 관련해 뒷말이 무성하다. 해마다 심사위원의 적격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지만 올해는 특히 EBS 인사의 심사 참여를 두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EBS가 단순히 방송사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투자사 위치에 있는 만큼 공정을 기하려면 이들을 심사위원 풀(Pool)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심사위원 적격성 놓고 시끌
관련 업계에 따르면 콘진원은 본편·시즌, 초기본편, 청장년층, 독립, 부트캠프 등 애니메이션 분야 지원사업 5개에 대한 1차 서류심사와 2차 발표평가를 진행해 4∼5월 최종 선정작을 발표했다.
점수 비중이 높은 발표평가 심사는 ‘위원장 1인을 포함한 7인 내외의 산·학·연 전문가로 평가위원회를 구성한다’ 는 지침에 따라 애니메이션 기획, 제작, 유통·배급·플랫폼, 금융·투융자·투자심사 관련 분야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전문가와 콘진원 내부 전문가가 맡았다.
다만 평가위원장은 선출에 대한 지침이나 규정은 따로 없어 현장에서 심사위원끼리 제비뽑기 등의 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본편·시즌작 심사에서 현직 EBS PD가 평가위원장을 맡아 심사를 이끌었고, 한 제작사 대표가 이에 대해 거칠게 항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다시 심사위원 적격성 논란이 불거졌다.
애니메이션 제작 및 특성 또는 사업 구조를 잘 모르는 외부 인사나 자질·함량 미달의 인사, 사안별로 이해관계를 가진 인사가 심사한 결과가 과연 객관적이고 공정하겠느냐며 의구심을 드러내는 목소리는 매년 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 편성권과 투자력을 갖춘 방송사 관계자가심사에 참여한 것도 모자라 평가위원장을 맡고, 콘진원이 이를 제지하지 않은 건 부적절한 처사였다는 지적이다.
A제작사 대표는 “EBS는 자사가 투자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잘 편성해 주지 않는다는 말이 돌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은 곳” 이라며 “갑을 관계로 볼 때 갑의 위치에 있는 방송사 관계자가 심사장에 들어온 것 자체가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 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자사와 관련 있는 작품을 심사할 때는 알아서 자리를 비우곤 했다” 며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애초에 부르지 말았어야 했다” 고 말했다.
B제작사 관계자는 “투니버스 같은 방송사를 콘텐츠를 구매하는 단순 바이어라고 한다면, EBS는 투자와 사업을 병행하므로 바이어이자 셀러이기도 하다” 며 “콘진원은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이들이 관여하지 못하도록 심사위원 풀에서 제외했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무 관련성 높은 이들이 심사·피심사자로 만나는 게 문제 본질
콘진원은 2022년 콘텐츠산업 지원 5대 혁신전략에 따라 현장 전문가 중심으로 심사위원 풀을 재정비했다.
객관적 자료만 있으면 누구나 심사위원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허점을 막고 전문성과 공정성이 균형을 이룬 평가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조현래 원장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업계와 간담회를 하다 보면 심사위원에 대해 ‘저 사람이 나보다 실력이 안 되는데 어떻게 내 사업을 심사하지?’ 라는 불만을 많이 듣는데 절차적 공정성에만 치중하다보니 전문성이 간과된 측면이 있었다” 고 밝혀 재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콘진원은 내부 전문가가 평가에 직접 참여하는 책임심의제를 지난해 도입하는 등 심사의 편향성 우려를 해소하고 전문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심사평가제도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심사위원 적격성과 심사 결과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 원인은 심사위원 풀이 제한적이라는 데에 있다.
가뜩이나 좁은 시장에 창작자, 제작사, 방송사, 투자사, 제조·유통사가 저마다의 이해관계로 얼기설기 엮여 있고 다른 산업군에 비해 구성원 층이 얇아 심사자와 피심사자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게 불씨로 작용한다.
따라서 물갈이 수준의 대폭적인 교체나 역량 있고 객관적인 외부 인사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는 한 논란을 잠재우는 건 요원한 일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심사위원 자질 논란은 항상 있었지만 이번에는 심사장의 분위기를 끌고 갈 수 있는 위치에 현직 방송사 관계자가 있었기 때문에 유독 반발이 컸던 것” 이라며 “평소 직무 관련성이 높은 사람들이 심사장에서 때에 따라 심판이나 선수로 번갈아 만나니 탈락한 사람들이 공정성에 의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 고 푸념했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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