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2-03-18 08:00:49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2010년 미국으로 건너가 실험애니메이션 석사과정을 마치고 프리랜서로 일하다 2019년 가을부터 모교인 홍익대 영상애니메이션학부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졸업작품을 준비 중인 4학년을 대상으로 기획부터 제작까지 애니메이션 전반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수상한 더 플레이그라운드란 작품을 설명해달라 원래 단편 실사영화로 만들려고 기획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하면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브제를 활용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이 작품은 소녀의 주도로 시작된 놀이가 점차 소년의 놀이로 바뀌면서 , 소녀는 자신의 놀이터가 이전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내용을 담았다. 내가 가진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당시 친구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캐릭터와 동작 , 여러 상징 요소로 표현했다. 관객들에게 작품의 주제를 이해시키기보다 어떠한 감정이 전달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나만의 트라우마가 대중에게 보편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랐다.
실험적이지만 난해하다는 평가도 있던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야기를 그대로 나열하기보다 나름의 서사를 만들어 내 시선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사실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편이다. 대신 감정은 직설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이해보다 작품이 전하는 작은 감정이라도 전달됐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의도를 따라가기보다 관객들이 상상하며 자기만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괴기스러운 분위기의 연출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 작품의 주제나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작품에서 다루는 감정 자체가 어두운 면이 많아 공포감을 조성하는 연출 방식을 도입했다. 공포는 속내를 드러내는 매우 직설적이고 솔직한 감정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웃음) 그러고 보니 주로 감춰진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의 동심이나 천진난만함 , 순수함이 주는 밝은 이미지도 무척 좋아한다. 중요한 건 어둡거나 밝은 이미지가 아니라 꾸밈없고 군더더기 없는 솔직한 감정이다. 그래서 그간 만든 작품들을 보면 그림의 배경이 없고 섬세한 장치도 많지 않다. 감정 전달에 불필요하고 배경보다는 캐릭터의 움직임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극중 오브제를 어떤 목적으로 활용하는가? 오브제를 활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더 플레이그라운드가 처음이다.
주로 드로잉 작품을 만들었는데 처음 기획했을 때처럼 실사와 잘 어우러지는 기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다 그림보다 오브제가 실사 캐릭터를 대변할 수 있는 적절한 도구라고 판단해 스톱모션 기법을 적용했다. 이 작품은 내가 가진 현실의 세계관이 있고 캐릭터의 세계관이 있는 액자식으로 구성했다. 따라서 현실의 내가 들여다본 마음의 놀이터가 인형들이 움직이는 세계였고 , 놀이터에는 인형들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당시 친구를 만나면서 꿨던 꿈에 나왔던 말 , 토끼 , 벌레 등을 상징의 요소로 활용해 연출에 접목했다. 그간 드로잉 작업만 하다 보니 새로운 기법을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에 등장하는 오브제를 모두 직접 만들었다. 그렇다고 꼭 오브제 활용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그저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치나 기법을 찾을 뿐이다.
작품들을 관통하는 나만의 시선이 있는가?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진 기억과 경험을 작품으로 표현해왔다. 내게 영향을 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파생된 기억이나 인상 ,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작품으로 풀어내면서 단순히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기보다 기억들을 제3자의 눈으로 객관화해 내 상처를 치유하거나 앙금을 해소하는 계기로 삼았다.
더욱이 작품을 만든다는 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이방인의 삶을 살았던 내 정체성을 찾는 과정일 수 있고 내가 여태 만나고 경험한 것 중 영향을 준 그 무언가를 되새겨 기록을 남기는 의미도 있다.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가? 역시 어두운 주제의 작품이다.
밝은 작품을 만들려고 했는데 기괴한 것을 추구하는 취향이 묻어나는 것 같다.(웃음) 2D로 만들어볼 생각인데 이번에는 그간 배제했던 대사를 넣어볼 참이다. 지금까지는 대사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 작품에서는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면서 나타나는 심리를 보여주려고 하는데 복합적인 감정을 대사 없이 보여주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언제 완성될지는 아직 모른다.(웃음)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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