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6-06-26 08:00:03
전쟁이 무서운 노이프는 방안에 틀어박힌 히키코모리가 됐다. 그는 방 안을 가득 채운 전쟁 상징물들을 보며 곧 전쟁이 일어날 거라 믿는다. 이에 택배기사, 집주인, 여자 친구 나타샤가 찾아와 그를 밖으로 끄집어내려 한다. <겁쟁이 노이프와 꼬프쳬크>를 만든 최하영 감독은 “우리 일상에 잠재된 전쟁의 공포를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서양화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2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 만든 ‘우리는 슬프게도 언제까지나 타인인 거야’, 그리고 ‘몬스테라가 하는 말을 들어봐’, 3학년 때 뉴미디어 수업의 과제로 만든 ‘겁쟁이 노이프와 꼬프쳬크’로 ‘자기만의 방’이란 테마의 시리즈를 완성했다. 방은 개인의 삶에 침투한 복잡한 사회 문제를 보여주고 그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는 공간이다. 방 안의 소품은 작품의주제를 은유적으로 상징한다.
<겁쟁이 노이프와 꼬프쳬크>는 어떤 이야기인가?
주인공 노이프는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여 방을 방공호처럼 개조하고 스스로 감금한다. 택배기사, 집주인, 여자 친구 나타샤가 찾아와 계속 말을 건네며 공포에서 벗어나게 돕는다. 노이프의 방을 채운 건 탄흔, 민방위 시설, 방호기지 등 실제 서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쟁 관련 흔적들이다. 일상의 공간을 가득 메운 이런 전쟁의 흔적은 노이프에게 전쟁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상기시킨다. 노이프 꼬프쳬크는 우크라이나어로 노아의 방주를 뜻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전쟁의 공포를 가장 크게 느꼈다. 순간 우리나라와 북한의 상황이 떠올랐다. 부모 세대는 결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하지만, 도발의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다. 전쟁을 선동하는 자를 보면 불편한데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존재한다. 그런 감정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일상과 비일상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였다.
<몬스테라가 하는 말을 들어봐>란 작품도 소개해달라
환경 운동을 둘러싼 인간중심주의와 생태주의 사이의 딜레마를 다룬다. 환경운동가 진은 식물의 보호자를 자처하지만, 동시에 식물을 분류하고 가치를 측정하며 소유한다. 그런 그 앞에 식물 친구 몬스테라가 나타나 말을 건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환경오염 앞에서 진짜 약자는 인간인지 식물인지 질문을 던진다. 환경운동에 숨은 인간중심주의를 드러내고 인간과 자연의 진정한 공생의 의미를 조명했다.
작품마다 주제가 묵직하다. 무엇에서 영감을 얻나?
사회나 역사 관련 뉴스에 관심이 많다. 노동 운동을 하신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재미를 느껴 사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도 많다. 그래서 나란 개인이 과연 뭘 할 수 있을지 오래 고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창작이더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부족하게나마 표현할 힘이 있다고 느꼈다. 그러니 자연스레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인가?
고등학생 때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다. 화면이 예쁘고 감각적이었다. 그래서 홍콩이란 나라에 푹 빠졌다. 근데 스무 살이 넘어 알게 된 홍콩은 내가 알던 것과 달랐다. 홍콩이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닐 때, 그곳에선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홍콩을 사랑했지만 정작 그 실체에는 무지했던 거다. 그러한 환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충격을 표현하고 싶어 2학년 때 처음 애니메이션에 도전했다. 그 작품이 ‘우리는 슬프게도 언제까지나 타인인 거야’다. 사실 애니메이션고를 나왔어도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진 않았다. 친구들이 맨날 기숙사에서 밤새고 힘들어하는 걸 봤으니까.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어울리는 매체를 찾으니 결국 이걸 선택하게 되더라. 참 묘했다. 방학을 알차게 보내려고 하나씩 만들다 보니 시리즈가 됐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얻는 즐거움은?
사실 너무 괴롭다. 노동 강도가 세서. 그래도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을 매체는 애니메이션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약간 무거운 얘기를 조금 가볍고 즐겁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졸업작품도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섞인 포맷으로 준비하고 있다. 작가로서 창작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데 애니메이션이 나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건가?
지금까지 역사와 사회라는 거대한 서사 안에서 개인이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왔는지 탐구해 왔다. 이러한 움직임과 현상을 포착해 꾸준히 기록하고 싶다. 언제까지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미디어 형태의 데이터를 계속 남기고 싶다. 난 소시민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담을 수 있다. 앞으로도 나와 가까운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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