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열전] 최의현 도에이 애니메이션 PD, 애니메이션을 끊을 수 없어요 희망 고문에 중독됐거든요

Interview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4-12-12 08:00:10

애니메이션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장인 정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애니메이션계에 들어온 지 10년 정도 되는 것 같다. 크고 작은 스튜디오를 거쳐 프리랜서 PD로 활동 중인데 작년 8월부터 일본 도에이 애니메이션에서 일하고 있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알사탕의 배급 사업과 마케팅을 맡고 있다. 스튜디오N, 스튜디오미르와 공동 제작하는 네이버웹툰 원작의 고수란 작품 기획에도 참여하고 있다.

 


원래 애니메이션 PD를 꿈꿨나?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학교 다닐 때는 감독이나 작가를 꿈꿨는데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다.(웃음) 내게 맞는 일을 찾다가 프로듀싱을 배웠다. 호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영화나 드라마 PD를 해보려 했더니 입봉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더라. 그러던 중 마침 대형 스튜디오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들어갔는데 영상 제작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어서 3년 정도 다니다 중소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사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개봉 업무를 맡으면서 PD 업무를 하나씩 배웠고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제작에 참여한 이후부터 프리랜서 PD로 활동하고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단연 유미의 세포들이다. 시즌1 제작 후반에 합류해 시즌2 제작을 이끌었다. 어린이용 작품만 하다가 어른용, 특히 주 시청 시간대에 방송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고무됐던 것 같다. 원래 하고 싶었던 실사 작품이었고 제작진과의 호흡도 잘 맞은 데다 영상 판매도 잘됐다. 서로 어떻게 일하는지 잘 모르는 드라마 제작진과 애니메이션 제작진 사이에서 소통 창구로 공감대를 만들고 제작 과정을 원만하게 이끌었던 게 큰 수확이었다. 내가 PD란 직함을 당당하게 내밀 수 있게 만든 작품이자 프리랜서 활동의 계기를 만들어줘 더욱 뜻깊은 작품이다.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 아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박람회장에서 홍보용으로 쓸 애니메이션 광고 영상을 두 달 안에 만들어내야 하는 일을 맡은 적이 있다. 스케줄이 너무 빠듯했다. 고객사도 이를 알면서도 맡긴 일이라 해야만 했다. 그때 제작팀이 내게 모든 디렉션을 일임하더라. 나도 그들을 믿고 모두가 하나가 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실랑이 한 번 없이 서로의 신뢰만으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벽히, 가장 빨리 끝냈다. 서로의 믿음으로 뭉쳐진 단단한 팀워크가 프로젝트 완수와 콘텐츠 품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체감한 순간이었다. 

PD를 해보려고 들어온 젊은 친구들이 못 버티고 나갈 때는 정말 아쉽다. 선배들이 길을 열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앞선다. 사실 PD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요구하는 조건도 많다. 그걸 해내지 못하면 능력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그런데 처우는 낮다. 감독의 하수인처럼 비쳐질 때도 있는데 PD에 대한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직군에 대한 이해도도 높여야 한다.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데 학생들이 PD는 그저 스케줄이나 예산 짜는 사람으로 알더라. 그래서 하나라도 더 많이 가르쳐서 이들이 현장으로 유입될 수 있게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매번 떨어져도 조금만 더 공부하면 합격할 것 같아 도전을 멈추지 못하는 고시생의 마음이랄까. 희망 고문에 중독된 것 같다.(웃음) 성공을 향한 열망과 설렘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끊을 수가 없다. 특히 제작 현장에서 느껴지는 순수함과 열정이 좋다. 재능 있는 사람도 많다. 그들을 키워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나 이야기가 있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특히 노인이나 어린이, 비주류의 이야기에 끌린다. 이런 걸 재밌게 풀어내는 시트콤을 만들어보고 싶다. 평소 코미디 장르를 즐긴다. 현재 기획 중인 스토리가 있는데 코믹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내볼 생각이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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