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열전] 연필로 명상하기 한승훈 PD, 국산 장편도 재미있다는 걸 보여드릴게요

Interview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4-01-15 08:00:21

애니메이션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장인 정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연필로 명상하기에 들어와 PD로 일한 지 13년째다. 소중한 날의 꿈을 시작으로 메밀꽃·운수 좋은 날·봄봄·소나기·무녀도 등 한국 단편 문학 시리즈, 현재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살아오름: 천년의 동행, 아가미까지 연필로 명상하기가 만든 장편물에 모두 참여했다.


원래 애니메이션 PD를 꿈꿨나?

또래들이 그렇듯 디즈니나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 ‘나도 한번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보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림에 소질이 없어 막연히 동경하는 수준이었지만 한국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은 컸다. 그래서 한국의 정서가 강한 작품을 만든 곳을 찾다가 연필로 명상하기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림을 잘 그려야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싶었는데 안재훈 감독의 조언을 듣고 PD가 되기로 결심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2011년 개봉한 소중한 날의 꿈이다. 애착도 크고 가장 마음 아픈 작품이다. 당시 연필로 명상하기의 첫 장편이자 PD로 처음 참여한 작품이어서 기대가 컸는데 트랜스포머3가 갑자기 상영 일자를 앞당겨 동시에 개봉하는 바람에 상영관이 확 줄어들어 크게 낙심했다. 하지만 관객들의 관심과 응원 덕분에 멀티 플렉스가 아닌 독립영화관 같은 작은 영화관에서 수백일 동안 상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 특히 해외 공관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소중한 날의 꿈을 찾으면서 지금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상영하고 있다. 1∼2월에는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상영할 예정이다. 잊히지 않고 꾸준히 상영돼 기쁘다. 소중한 날의 꿈이 스크린에 처음 펼쳐 졌을 때 관객들의 반응을 아직도 기억한다. 완성한 작품 하나가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그때 깨달았다.

 

작품을 만들면서 뿌듯했던 순간, 그리고 아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함께 객석 뒤편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항상 개봉 전에 제작진 부모님을 모시고 시사회를 여는데 자식이 만든 작품을 보며 자랑스럽고 대견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간의 힘든 기억이 싹 씻겨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스튜디오 입구에 누구든지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방문객들이 메모지에 응원하는 말을 적어놓곤 하는데 이를 보면서 ‘쉼 없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다만 그간의 작품이 흥행하지 못한 건 못내 아쉽다. 지금까지 선보인 작품과 달리 대중성이 강한 아가미와 영웅본색을 통해 이런 아쉬움을 훌훌 털겠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제작진과 작업하며 함께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이 즐겁다. 그들 각자가 작품에 온전히 집중해 재능을 맘껏 발휘하도록 돕는 데에서 나의 가치와 일의 의미가 더 빛난다고 생각한다. 제작진의 능력이 관객에게 오롯이 전해지게 하는 게 내 역할이다. 그들과 함께 환호하며 성공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힘을 얻는다.


요즘 애니메이션업계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애니메이션 관련 소식을 일반인이 접하기는 힘들다. 콘텐츠 분야에서 애니메이션이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깝다. 우리 땅에서 탄생한 이야기로 세계와 소통하는 창작품을 만드는 모든 분과 연대해 애니메이션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싶다. 우리 스튜디오가 가진 힘과 시스템이 업계에 도움을 주고 이끌어나갈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나 이야기가 있다면?

흥행작을 만드는 게 아닐까.(웃음)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로 흥행한 국산 장편물을 꼽기 어려운데 대중성 높은 작품으로 국산 장편물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액션 장르를 좋아한다. 이번에 영웅본색 프로젝트를 맡게 돼 내심 기대가 크다. 그간의 갈증을 해소할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웃음) 언젠간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여운을 남기는 드라마 장르도 해보고 싶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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