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재 칼럼니스트
hanjae.elly.kim@gmail.com | 2026-06-18 15:00:28
방송·미디어 기술과 콘텐츠 제작의 현재를 보여주는 제 34회 국제 방송·미디어·음향·조명 전시회(KOBA 2026)의 마지막 날. 코엑스 크리에이터존에서는 AI툰의 실제 제작 과정을 다루는 오픈 세미나가 강동대 만화웹툰콘텐츠학과의 진행으로 열렸다. AI툰과 관련해 자문, 세미나 또는 특강에서 다룰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여전히 비슷하다.
“(성능 외 가격 궁금증 포함하여) 어떤 툴을 써야 하나요?”, “캐릭터 일관성은 어떻게 유지하나요?”, “실제 원고에도 쓸 수 있나요?” AI가 도입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맴도는 그 질문들을 탓할 순 없다. 막 시작하는 사람에게 툴은 입구이고, 입구를 모르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까. 그런데 의외로 이번 세미나에서 나눈 것들은 예전과 조금 달랐다. ‘AI로 이미지를 얻는 일과 만화를 완성하는 일은 왜 전혀 다른 문제인가?’로 더 다가간 느낌이랄까.
출판만화를 꿈꾸던 서용주 학생이 AI툰을 선택한 이유
서용주 학생의 발표 제목은 제법 솔직했다. “옛것을 꿈꾸던 학생은 왜 AI 만화를 꿈꾸게 되었는가”
자신이 사랑하던 만화의 방식과 지금 자신이 사용하는 제작 환경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이 학생은 ‘켄간 아슈라’의 그림 작가 사례를 가져왔다. 이미 현장의 프로들이 AI를 보조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AI를 쓴다는 것이 만화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아님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작업에 적용한 과정은 생각보다 구체적이었다. 톱 뷰 거리 장면 등 작품에 한두 번 등장하고 마는 장면처럼 직접 모델링하기엔 부담스러운 배경은 AI로 먼저 시각화하고 이후 원하는 톤과 구도에 맞게 조정했다.
- 장면은 콘티를 먼저 그리고, AI로 장면을 생성한 뒤, 화각과 흑백 전환, 인물 위치를 다시 정렬했다.
- 캐릭터는 AI 초안을 기반으로 자신의 스케치와 러프를 계속 반영해 학습시켰고, 결과물에 직접 펜 선과 컬러를 입힌 뒤 빛과 질감을 수정했다.
- 마지막으로 AI에게 검토를 받아 전후 차이를 비교한 결과물을 공유했다.
이 흐름에서 눈에 띄는 건 AI가 작업을 단순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하는 것이 구체적일수록 시행착오와 수정도 많아졌다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한 번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이실직고했다. 정확한 지시와 단계적인 수정이 있어야 시간과 결과물의 질을 함께 잡을 수 있다는 것. 단순하게 ‘생성해줘’로는 정말 아무것도 작품에 쓸만한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사람들이 흔하게 오판하는 지점을 지적한 부분이었다. AI를 옹호하거나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다. 그냥 자신이 원하는 만화를 더 잘 만들기 위해 쓸 수 있는 도구를 골랐다. 그 선택의 기준이 분명했다.
아이디어, 전달, 변별-한현 학생이 정리한 세 단계
두 번째 발표자 한현 학생은 다른 각도에서 AI 활용을 설명했다. 그는 완성할 장면보다 작업 준비 단계에 집중했다. 만화에서 캐릭터 시트는 작품에서 티는 나지 않지만 중요한 작업이다. 표정, 복장, 비율, 실루엣을 일관되게 정리해야 장기 작업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이 학생은 자신의 그림을 기반으로 AI를 활용해 캐릭터 시트를 구성하고, 프롬프트를 수정하며 표정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다듬어갔다. 최진규 작가의 바이브 코딩 기반 AI툴을 활용한 사례도 소개했다. 단순 이미지 생성을 넘어 표정과 의상을 여러 버전으로 테스트하는 방식이었다.
배경 작업에서는 스케치업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분위기의 공간이 필요할 때 AI로 참고 이미지를 먼저 생성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판단을 내렸다. AI 결과물이 기존 이미지와 유사하다고 판단되면 쓰지 않거나 다시 생성했다. 저작권 문제를 창작자 스스로 걸러냈다. 이 학생은 발표를 통해 과정을 세 단계로 정리를 하였는데 맥락을 잘 잡아내고 있었다.
- 첫째, 어떤 아이디어로 AI를 사용할지 방향을 잡는다.
- 둘째, 그 아이디어를 AI에 어떻게 설명할지 구체화하여 생성한다.
- 셋째, 결과물에 문제가 없는지 변별한다.
이 순서에서 AI는 두 번째 단계에만 등장한다. 방향을 정하는 것도, 결과를 판단하는 것도 창작자의 몫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한현 학생은 “AI가 내 표현의 범위를 넓혀줬다”고 말했다. 넘겨준 것이 아니라, 넓혀줬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작가의 시선이 먼저다
이번 세미나에서 두 학생의 발표가 남긴 것은 AI 활용 방법이 아니다. 서용주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의 형식을 기준으로 AI를 어디까지 끌어들일지 결정했다. 한현 학생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장면을 먼저 정하고, AI를 준비 도구로 배치했다. 두 사람 모두 AI로 무언가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만화로 무언가를 시작했다.
이것이 지금 학생 창작자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이기도 하다. 생성 자체가 쉬워질수록 작가는 더 명확한 자기 기준을 가져야 한다. 내가 만들고 싶은 장면은 무엇인가. 이 인물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가. 독자는 어느 컷에서 멈추고, 어느 컷에서 다음을 궁금해할 것인가. AI가 만든 수많은 이미지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이 질문들은 툴이 답해주지 않는다. 작가만이 답할 수 있다.
행사 마지막 날, 철수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음에도 참석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학생들이 보여준 것이 기술 시연이 아니라 작업자의 태도였기 때문이 아닐까. 김종익 강동대 만화웹툰콘텐츠학과장은 “초반에는 부정적인 인식으로 AI를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가 교육자로서의 고민이었는데 이제는 학생들이 AI를 유행하는 기술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스스로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고 말했다.
AI툰의 시대가 왔다고 해서 만화의 질문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툴을 넘어 원고로, 이미지를 넘어 연출로, 생성물을 넘어 작품으로. 이번 세미나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건 그 질문을 이미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김한재
·강동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콘텐츠과 교수
·애니메이션산업, 캐릭터산업, 만화산업 백서 집필진
·저서: 생성형 AI로 웹툰·만화 제작하기(2024)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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