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재
| 2026-07-23 11:00:38
일단 끝내기 플래너. 지난 5월 오픈AI가 진행한 해커톤에서 이 프로젝트는 아이디어 우수상을 받았다. 거창한 상업용 서비스도 아니었고, 모두가 반드시 써야 하는 범용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에게 팔릴 서비스라기보다 필자 한 사람에게 정확히 맞는 도구였다.
만화를 좋아하던 덕후가 오래 겪어온 창작의 어려움을 말로 풀어내고, 그 말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코드를 직접 치며 시작한 게 아니라 필요한 걸 설명하고, 바꾸고, 다시 요청하며 만들어진 프로그램. 말하자면 바이브 코딩의 결과물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과정을 공유한다. 우리는 보통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 헤맨다. 일정 관리 앱, 프로젝트 관리 앱, 창작 노트 앱, 할 일 관리 앱을 이것저것 써보다가 결국 조금씩 맞지 않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 내게 맞는 프로그램이 없다면 그냥 만들면 된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큰돈을 벌어줄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모두가 각자 필요한 걸 만들어 쓰는 세상이 된다면, 이런 종류의 작은 개인화 도구는 상업적으로 대단한 시장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대신 훨씬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기성 도구에 자신을 맞추기만 하지 않는다. 일, 감정, 습관, 불안, 목표에 맞는 도구를 직접 갖는다. 이것은 개인화 시대가 정말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거대한 플랫폼이 모두에게 같은 기능을 제공하는 시대에서, 각자 자기 삶에 맞는 작은 도구를 만들어 쓰는 시대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그 전환을 아주 작지만 선명하게 볼 수 있었기에 더 진지하게 느껴졌다.
전문성 노트에서 서비스가 되기까지: '일단 끝내기 플래너' 제작 과정
이번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웹툰 일정 관리 앱을 만들자'에서 출발한 건 아니었다. 출발점은 한 사람의 전문성 노트였다. 해커톤에 참여하기 전에 오픈AI 운영팀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에 관해 질문했고, 정말 긴 인터뷰 내용을 준비했다. 그 내용을 전문가 노트로 정리해 받았는데, 그 안에는 교수, 강의자, 콘텐츠 기획자로서의 경험이 담겨 있었다. 특히 만화, 웹툰, 생성형 AI를 다루는 창작 교육자의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첫 대화의 내용은 이것이었다.
제안받은 내용 중 마음에 드는 건 '부족해도 일단 마감해보기'라는 콘셉트였다. 마침 딱 갖고 싶던 기능이었다. 정리된 전문가 노트, 그리고 그 언어를 분석해 니즈를 찾아내는 코덱스(Codex)라니. 이는 단순한 작업 요령이 아니라, 창작자를 오래 버티게 하는 루틴을 만들어주는 보조 도구에 가깝다. 초보 창작자는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작업을 엎고 싶어 한다. 남과 비교하며 조급해지고 실제 작업량을 과소평가해 마감을 놓치기도 한다. 그래서 완벽한 작품 만들기가 아니라 마감까지 도달하도록 돕는 도구로 방향을 잡았다. 제안받은 문장들이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건 아니라서 그 중 요소들을 조금씩 수정해 다음과 같이 요청했더니, 2분 23초 만에 첫 번째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일단 끝내기 플래너. 대상은 웹툰, 만화, 콘텐츠 작업을 처음 시작하는 학생이나 초보 창작자였다. 해결하려는 문제는 명확했다. 작업을 기획, 콘티, 작화, 채색, 편집, 수정으로 나누고 마감일에 맞춰 작업을 끝내려면 오늘 뭘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첫 번째 과정에서는 '마감일을 입력하면 남은 날짜에 맞춰 작업 단계를 자동으로 나눠주는 간단한 화면을 만들고 싶다'는 요청이 핵심이었다. 이 요청으로 프로그램의 기본 뼈대가 만들어졌다. 사용자는 작업 이름과 마감일을 입력하고 버튼을 누르면 일정표를 받는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건 기능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초보 창작자에게 필요한 건 많은 설정이 아니라 '오늘 뭘 하면 되는가'였기 때문이다.
그다음부터는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보면서 필요한 요소를 하나하나 추가했다.
1. "하루에 몇 시간씩 작업해야 하는지에 대한 타임 테이블도 만들어줘."
이 프롬프트는 단순한 날짜표를 실제 작업표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날짜별로 기획, 콘티, 작화 같은 작업명이 나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창작자는 오늘 저녁 7시부터 몇 시까지 뭘 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하루 작업 시간을 입력하면 준비, 집중 작업, 저장/정리까지 나뉘는 시간표가 추가됐다.
2. "작업할 수 없는 다른 일정이 있을 때 그날의 시간은 따로 설정할 수 있도록 선택과 수정 섹션을 만들어줘."
이 수정은 프로그램을 현실에 더 가깝게 만들었다. 실제 창작자의 일정은 매일 일정하지 않다. 어떤 날은 수업이 있고, 어떤 날은 회의가 있고, 어떤 날은 가족 일정이 있다. 그래서 특정 날짜만 작업 가능 시간을 바꾸거나, 0시간으로 설정해 쉬는 날로 만들 수 있게 했다. 이 프롬프트는 프로그램에 '현실의 불규칙성'을 반영한 중요한 단계였다.
3. "월별 달력을 만들고 그날의 일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줘. 작업할 수 있는 시간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줘."
이 프롬프트는 사용성을 크게 높였다. 날짜를 숫자로 입력하는 방식은 기능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직관적이지 않다. 달력에서 날짜를 누르고 그날의 작업 가능 시간을 수정하는 방식은 훨씬 자연스럽다. 이때부터 프로그램은 단순 계산기에서 일정 관리 도구에 가까워졌다.
4. "실제 작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입력할 수 있도록 해줘."
그래서 이렇게 요청했다. 그리고 웹툰 1화 70컷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을 구체적 예시로 제시했다. 기획 3시간, 콘티 2시간, 작화 70시간, 채색 35시간, 편집 3시간, 수정 3시간까지 총 116시간이다.
이 프롬프트는 프로그램의 핵심 계산 방식을 바꾸는 요청이었다. 이전에는 마감일까지 남은 날짜에 작업 단계를 나누는 방식이었는데 실제 창작에서는 창작자마다, 단계마다 걸리는 시간이 같을 수 없다. 예시에서 적은 시간만 보더라도 기획은 3시간이지만 작화는 70시간이다. 따라서 단계를 균등하게 나누는 방식은 현실적이지 않다.
단계별 실제 소요 시간을 기준으로 일정을 제안했는데 성공적이었다. 이후 프로그램은 하루 작업 가능 시간과 전체 소요 시간을 비교해 예상 완료일을 계산했다. 마감일보다 늦으면 며칠이 더 필요한지 알려주고, 마감에 맞추려면 하루 평균 몇 시간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부족한 시간을 외주나 도움으로 빼야 한다는 판단도 가능해졌다. 이 부분은 단순 일정표를 넘어 창작 프로젝트 관리 도구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5. "PDF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줘."
여기까지의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다 만들어진 것 같았지만, 원하는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평소 작화 한 컷을 그리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채색은 얼마나 걸리는지 평균 작업 시간을 계산해 전체 작업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컨트롤하고 싶었다.
결과물을 공유 가능한 형태로 바꾸었다. 일정표는 화면에서 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학생에게 나눠주거나, 팀원과 공유하거나, 스스로 출력해 붙여둘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PDF 저장 버튼을 추가했다. 기술적으로는 브라우저의 인쇄 기능을 활용해 입력 폼은 제외하고 결과 일정표만 PDF로 저장되도록 만들었다.
6. "작업 시간이 마감일에 맞게 완료되려면 하루에 작업해야 하는 시간을 거기에 맞게 설정해줘."
위 요청으로 자동 역산 기능이 만들어졌다. 사용자가 직접 하루 몇 시간을 해야 하는지 계산하지 않아도, 전체 작업 시간과 마감일까지 남은 날짜를 기준으로 하루 작업 시간을 자동 계산한다. 이 프롬프트는 사용자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도구가 단순히 정보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사용자가 다음 결정을 쉽게 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7. "하루 가능 시간을 하루 할당 시간으로 수정해주고 마감에 맞춰 일정을 맞추기 위한 시간이 디폴트로 정해질 수 있도록 해줘."
위 요청으로 언어와 기본값의 의미를 다듬었다. 가능 시간은 사용자가 가진 여유 시간을 뜻하지만, 할당 시간은 프로젝트에 의도적으로 배정하는 시간을 뜻한다. 이 표현 변경은 작지만 중요하다. 창작 일정 관리에서는 시간이 남으면 쓰는 게 아니라 미리 배정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앱을 처음 열었을 때부터 마감에 맞는 하루 할당 시간이 자동으로 들어가도록 바꾸면서, 사용자는 계산 없이 바로 기준 일정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이 프로그램을 버셀(Vercel)에서 배포했다. 로컬에서만 열리던 HTML 파일을 웹 서비스 링크로 공개했다. 개인 노트 문서는 배포되지 않도록 제외했고, 실제 서비스 파일만 올라가도록 정리했다.
이 과정을 진행하며 느낀 건 프로그램은 결코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기능으로 시작했다. 마감일을 넣으면 기획, 콘티, 작화, 채색, 편집, 수정이 나오는 정도였다. 그러나 구현된 프로그램을 살펴보며 프롬프트가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프로그램은 실제 창작자의 현실에 가까워졌다. 각 프롬프트는 단순한 수정 요청이라기보다 각각의 요청이 프로그램의 관점을 바꾸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일정표가 아니라 창작자가 끝까지 가는 데 필요한 시간 감각을 배우게 하는 도구가 됐다. 특히 웹툰처럼 작업량이 많고 단계가 분명한 분야에서는 막연한 열정보다 구체적인 시간 계산이 중요하다. 이 도구는 초보 창작자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잔소리 중 하나였던 '지금 네가 부족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작업량을 시간으로 바꿔보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것을.
이것이 바로 전문가의 경험이 서비스로 바뀌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펼쳐질 세계가 궁금해진다.
김한재
· 강동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콘텐츠과 교수
· 애니메이션산업, 캐릭터산업, 만화산업 백서 집필진
· 저서: 생성형AI로웹툰·만화제작하기(2024)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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