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재 교수와 함께하는 AI 활용 가이드] AI 시대의 창작 교육: 거꾸로 학습과 시나리오 공부가 더 중요해진다

Column

김한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6-03-26 11:00:37

요즘 AI 창작 수업을 하다 보면 이제는 학생들이 빠르고 능숙하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은발의 캐릭터, 세련된 색감, 영화 같은 조명. 한 컷만 놓고 보면 완성도가 충분해 보인다. 학생도 스스로 만족한다. “교수님, 꽤 잘 나온 것 같은데요?”


정말 그럴까. 그 캐릭터가 이야기의 톤과 잘 맞는지, 외형과 의상이 세계관과 잘 어울리는지, 인물의 성격과 표정 연기가 일치하는지, 그리고 그 인물을 10화까지 동일 인물로 유지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호기로운 기색은 금세 사라진다. 그래서 AI 수업에 거꾸로 학습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싶다.



0에서 시작하면 생기는 착각
AI는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해도 결과를 내놓는다. 이것은 분명 놀라운 장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무언가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곧 자신의 실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학생에게 “판타지 캐릭터를 한번 만들어 보세요”라고 하면 은발에 붉은 눈, 가죽 코트를 입은 강렬하고 멋진 인물이 금세 등장한다.


그런데 만약 이야기가 근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사회 스릴러라면 어떨까. 주인공이 내부 고발을 고민하는 계약직 직원이라면 이 의상이 회사 복도에서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을까. 강한 시선이 늘 불안에 시달리는 인물의 성격과 맞을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캐릭터에게 이 스타일이 어울릴까. 항상 눈치를 보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어깨가 좀 더 내려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미지의 완성도와 서사의 설득력은 전혀 다른 문제다. AI는 ‘그럴듯함’을 제공하지만, ‘적합함’까지 판단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10을 먼저 기준점으로 세우고 시작하자
거꾸로 학습은 완성된 결과의 모습을 먼저 설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예컨대 ‘플랫폼 연재가 가능한 1화 완성본’을 목표로 잡는다. 캐릭터는 여섯 가지 표정과 세 가지 각도에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고, 배경은 와이드·미디엄·디테일의 세 가지 샷 세트로 구성해야 한다. 말풍선이 들어갈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며 컷과 컷 사이에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


이런 기준을 세워놓으면 학생은 더 이상 무작정 이미지를 생성할 수 없게 된다. 표정이 과하다는 것이 보이고, 카메라 앵글이 흔들린다는 것이 느껴지고, 톤이 통일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캐릭터의 일관성이 깨지고 감정의 강도가 장면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부족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그때부터야 말로 학습이 시작된다.


AI를 잘 쓰는 사람은 그럴싸한 이미지를 많이 생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목표를 세울 줄 알고 완성 기준을 언어로 정리할 수 있으며, 수정의 반복 과정을 설계하고 결과물을 냉정하게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거꾸로 학습은 바로 이 힘을 길러준다.


그런데 목표만으로는 부족하다. 목표를 세웠다고 해서 연출이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설계 기준이 있더라도 장면을 읽는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미지는 흩어지고 만다. 그래서 거꾸로 학습과 함께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것이 바로 대본집 공부다.


대본·시나리오 북은 연출의 압축 구조다
대본집을 펼치면 짧은 지문들이 눈에 들어온다. “(정적)”, “(그는 웃지만, 눈은 웃지 않는다)”, “(비가 내린다. 인물은 젖지 않는다)”같은 이 짧은 세 줄 안에는 수많은 연출 정보가 압축되어 있다. 조명은 어두워야 하고, 클로즈업이 적합하며, 웃음은 방어적인 것이고, 빗소리는 있지만 감정은 말라 있다는 뜻이 숨어 있다.


대본을 읽는다는 건 곧 지문을 장면으로 번역하는 훈련이다. 예를 들어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본다)”라는 지문 한 줄을 생각해 보자. 초보자는 단순히 창밖을 보는 이미지를 만든다. 그러나 연출자라면 질문을 던진다. 카메라는 정면에서 잡을 것인가, 측면에서 잡을 것인가. 역광을 이용해 실루엣을 만들 것인가. 창밖 풍경은 초점이 흐려져야 하는가. 이 침묵은 몇 초 동안 지속되는가.

 

이렇게 지문 한 줄이 수십 가지 연출 선택지로 확장된다. 대본집은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을 훈련하는 교재다.

 

▲ 불량공주 모모꼬(Kamikaze Girls, 2004)

외형은 장식이 아니라 논리다

학생들이 자주 놓치는 부분이 또 있다. 캐릭터 디자인을 멋의 문제로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외형이란 세계관의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성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고급스러운 스타일의 옷에 과감한 액세서리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이 마을에서 이런 옷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인가. 이 인물의 경제적 배경과 어울리는 차림인가. 소심한 성격이라면 시선을 더 피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손동작도 더 작고 조심스러 워야 하지 않을까.(불량공주 모모꼬 같이 시골에서 롤리타 패션을 추구하는 캐릭터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장르를 위한 의도된 설정 파괴다.)


외형, 의상, 자세, 표정은 모두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AI는 멋진 얼굴을 만들어 주지만, 그 얼굴이 이 서사 안의 인물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두 가지 훈련은 결국 하나로 만난다

거꾸로 학습은 완성된 결과의 모습을 먼저 세우는 훈련이고, 대본집 공부는 지문을 해석하고 장면으로 풀어내는 힘을 기르는 훈련이다. 이 두 가지가 만나면 창작의 과정은 분명한 흐름을 갖게 된다. 먼저 대본을 해석하고, 연출 구조를 설계한 뒤, 목표 기준을 설정한다. 그런 다음 AI로 이미지를 생성하고 수정의 반복 과정을 거쳐 최종 완성도를 점검한다.

이런 흐름으로 다가가면 AI는 그제야 도구의 자리에 놓이고, 창작자는 디렉터 위치에 설 수 있다.

 

AI 시대일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들
과거에는 한 컷을 만드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손으로 그리고 색을 입히고 수정하는 노동의 과정 자체가 곧 사고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결과가 즉시 눈앞에 나타난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결과물이 완성물처럼 보이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오히려 구조적 사고에 대한 훈련이 더 절실해졌다. 대본을 읽지 않은 창작자는 이미지를 쌓아 올릴 수는 있어도 서사를 쌓아 올리기 어렵다. 목표 없이 생성만 반복하는 창작자는 한 컷을 인상적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연재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어렵다.

 

AI 창작 교육은 기술을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고, 설계하는 힘을 기르는 수업이다


아무런 기준 없이 0에서 시작하면 우연히 나온 좋은 결과가 마치 실력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완성의 기준인 10을 먼저 세워놓으면 부족함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때 비로소 전략이 생기며 진짜 역량이 모습을 나타낸다. 대본을 읽으면 짧은 지문 한 줄이 풍부한 장면으로 확장되고, 연출에 대한 사고가 한층 단단해진다.

 

AI는 누구에게나 결과물을 내어준다. 그러나 무엇을 만들 것인지 결정하고, 그 인물이 정말 이 이야기 속의 사람인지 따져 보고, 이 장면이 진정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지 묻는 힘은 여전히 인간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AI 시대일수록 결과의 모습을 먼저 그려야 하고 대본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도구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창작자의 손에서 진정한 쓸모를 갖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 공부를 차근차근 함께하고 싶다면 ‘나노바나나로 AI툰을 제작하기’를 구매해 공부해 보길 추천한다.

 

 

 

 

김한재
·강동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콘텐츠과 교수

·애니메이션산업, 캐릭터산업, 만화산업 백서 집필진
·저서: 생성형 AI로 웹툰·만화 제작하기(2024)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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