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이슈로 돌아보는 2024년 캐릭터·애니메이션 산업

Special Report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4-12-03 08:00:00

한 해를 정리하는 연말이다.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지고 산업 전반을 뒤덮은 불황의 그림자는 캐릭터·애니메이션 산업을 짙고 어두운 구석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빛난 콘텐츠는 더욱 찬란했고 기쁨과 희망도 배가됐다. 올해 산업의 주요 흐름을 돌아본다.



<사랑의 하츄핑> 역대 흥행 2위 등극
올해 캐릭터·애니메이션 산업에서 일어난 ‘대박 사건’의 주인공은 사랑의 하츄핑이다. 사랑의 하츄핑은 누적 관객 수 123만 명(11월 21일 기준)을 기록하며 2012년에 개봉한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3D(105만 1,710명) 이후 12년에 만에 100만 관객 돌파란 기념비를 세웠다. 또 마당을 나온 암탉(2011년, 누적관객 수 220만 4,870명)에 이어 국산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 2위에 등극했다.

 

사랑의 하츄핑은 TV시리즈의 팬덤이 워낙 탄탄해 어느 정도 흥행을 예고한 작품이었다. 캐치! 티니핑은 최고 시청률 20.2%(시즌4 첫 방송, 5세 여아 기준), 유튜브 채널 누적 조회 수 7억 회에 이를 만큼 4∼7세 여아들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들이 환호하니 부모들도 티니핑을 모를 수 없었다. 매시즌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아이들의 성화는 어른들에게 티니핑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사랑의 하츄핑은 이런 핵심 타깃층의 팬덤을 극장으로 빠르게 불러 모은 덕에 100만 관객을 달성할 수 있었다.


스토리와 OST의 힘은 막강했다. 로미가 하츄핑을 구하기 위해 대신 목숨을 잃는 장면은 아이와 어른 모두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나만의 티니핑, 처음 본 순간, 두근두근 내 마음, 우리 함께, 너에게 갈게, 사랑의 기적 등 6곡의 OST는 로미가 하츄핑을 만나러 가는 여정, 이들의 마음이 통하는 과정 등 이야기 흐름에 따라 변하는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면서도 직관적으로 표현해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게 했다.


인플루언서 파워를 활용한 셀럽 마케팅도 주효했다. 배급사 쇼박스는 개봉을 앞두고 키즈 인플루언서부터 스타 가족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셀럽이 참가한 시사회를 열었다. 배우 조성하·신애라·박호산·정윤·소유진, 가수 오종혁·바다, 작곡가 주영훈, 방송인 유병재·박슬기 등이 SNS에 남긴 관람 평과 인증샷은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예년과 달리 추석 이후까지 이어진 기록적인 무더위도 야외보다 실내에 머무르게 했고, 가족 단위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호재가 됐다.

 

 

설 자리 잃어가는 키즈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의 흥행으로 국산 애니메이션 붐이 일 것이란 기대는 허망에 가깝다. 키즈 애니메이션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키즈 애니메이션이 대세가 될 수 있었던 건 특유의 높은 교육열에서 비롯된다. 자녀에게 뭐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하려는 부모들의 니즈가 에듀테인먼트 콘텐츠 소비를 촉진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영상 판권료가 해외에 비해 턱없이 낮은 상황에서 캐릭터 완구 판매로 얻는 수익이 훨씬 크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일단 완구가 잘 팔리면 라이선싱 품목군을 확장할 수 있고 출판, 공연, 해외 진출 등으로 수익을 다변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완구 시장 매출이 갈수록 줄면서 애니메이션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완구 판매율 저하는 저출산 현상과 직결 돼 있다. 장난감을 갖고 놀 타깃층의 감소는 곧 애니메이션 시청률 하락과 완구 소비 감소로 이어졌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모바일 게임, 유튜브가 장난감의 자리를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거나 부모가 사 주고 싶은 대체 아이템이 많아 꼭 완구에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제작사들은 시청층 감소 → 완구 판매 저조→ 제작비 환수 난망 → 투자 경색의 악순환에 갇혀 회사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업계는 타깃층을 높인 새로운 장르에 눈을 돌리고 있지만 정부 지원에 기대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수익성이 없어 투자 유치가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키즈 애니메이션 제작 이력만으로 웹툰 플랫폼, OTT, 펀드 등 눈높이가 높은 대형 투자사를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
 

사정이 이러니 영화계처럼 몸집을 줄이고 프리 프로덕션에 집중해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 넓어지고 있지만 갈 길은 멀다. 산업이 발전하려면 자본력, 분업화, 전문화가 필수지만 애니메이션 산업은 그 어느 하나 만족시키지 못한 채 여전히 낙후돼 있다.


어느 대표는 “지금껏 빚내가면서 운영해왔는데 이제는 막다른 길에 내몰리는 형국이다. 지원사업비를 받아도 완성할 수 없으니 작품 수도 줄었다. 마무리하지 못한 작품도 수두룩하다. 창작 애니메이션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푸념했다.

 

 

캐릭터라이선싱페어 전면 무료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올해 캐릭터라이선싱페어 전면 무료화로 콘텐츠 산업 살리기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콘진원은 불경기에 고군분투하는 콘텐츠업계 관계자들과 국민들을 위해 기업들에게 무료로 부스를 제공하고 관람객에게도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지금까지 캐릭터라이선싱페어에 참가하려면 기업은 부스당 최소 70만 원에서 최대 200만 원을 내야 했다. 하지만 무료로 전환하면서 잠재력 높은 영세 기업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일반 관람객도 무료료 입장시켜 남녀노소 즐기는 콘텐츠 IP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전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행사장 규모도 한층 넓혔다. 지난해에는 A홀(1만 368㎡)에서만 열렸지만 올해는 B1홀(3,645㎡)까지 늘려 총 1만 4,013㎡의 전시 공간을 확보, 총 724개 부스를 조성했다. 올해 캐릭터라이선싱페어에서는 400여 건의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해 300억 원 규모의 수출 상담 실적을 기록했다.

 

 

진격의 K-캐릭터, 중국·일본 진출 공세
국내 팬덤을 등에 업은 K-캐릭터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고 있는 모습은 위축된 IP 비즈니스 현장에 희망을 비춰주고 있다.


50만 명에 육박하는 팔로어를 거느린 잔망루피는 상하이징안 조이시티 백화점 광장에서 연 첫 공식 팝업스토어를 통해 중국에서 대세 캐릭터의 행보를 본격화했다.

 

 

참지 않는 성격의 강아지 캐릭터 몰티즈는 카카오 이모티콘의 인기를 위챗에서 이어가고 있다. 이모티콘 패키지 전송량은 출시 5개월 만에 누적 30억 건을 기록했고 샤오홍슈에서 게시물 조회 수는 2억 회를 돌파했다. 몰티즈는 모바일에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지난해 중국 최대 커피 프랜차이즈 루이싱커피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바이췌링, 큐렐, 오레오, 캐이스티파이 등 30여 곳과 손잡고 콜라보레이션 상품을 출시했다. 

 

잔망루피와 몰티즈는 이모티콘으로 얼굴을 알린 만큼 SNS를 애용하는 10∼20대에게 빠르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모티콘이 전달하는 다양한 감정에 기반해 젊은 층과 교감하고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한 사례다.
 

 

러블리 핑크 토끼 에스더 버니도 가세했다. 대만을 시작으로 중국 본토까지 진출한 에스더버니는 홍콩 현지 에이전트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중화권의 인기 캐릭터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홍콩(LCX), 대만(소고·글로벌몰·드림몰·신광미츠코시), 중국의 유명 쇼핑몰과 백화점(로프트·이세탄)에서 팝업스토어를 주기적으로 열고 있는 에스더버니는 활동 무대를 일본으로 넓혔다. 지난해 말부터 일본 활동을 재개한 에스더버니는 키카 갤러리 팝업&전시를 시작으로 유라쿠초(긴자) 마루이 백화점, 시부야109 백화점, 신주쿠 루미네몰, 소라마치 스카이트리, 요코하마 마루이, 헵파이브(오사카) 등 일본 대도시의 핫플레이스인 백화점과 쇼핑몰에서 열린 릴레이 팝업스토어로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여기에 EBS 자이언트 펭TV의 펭수, LG유플러스의 캐릭터 무너도 도쿄 시부야의 랜드마크 쇼핑몰 시부야109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캐릭터 왕국 입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불황 여파에 추억의 콘텐츠 속속 컴백
추억의 콘텐츠가 다시 등장한 건 불황의 여파다. 신작 투자를 최소화하고 리스크를 줄이려는 고민의 결과다.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았던 옛 작품으로 사업을 재개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는 것도 영향을 줬다.
 

 

동우에이앤이는 2002년에 방영한 인기 TV시리즈 애니메이션 올림포스 가디언을 더욱 선명한 화질로 리마스터링해 다시 방영하고있다. 방영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원작으로 한 올림포스 가디언은 그리스 신화로 전해 내려오는 올림포스의 12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린 작품이다. 2002년 SBS 방영 당시 평균 시청률 8.4%(최고 14.3%)를 기록했으며 이듬해 대한민국콘텐츠대상에서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받았다.

 

 

2005년 방영한 믹스마스터도 20년 만에 컴백을 예고했다. 동명의 온라인 게임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현실 세계와 게임 세계가 혼합된 상상의 세계에서 주인공들이 트레이딩 카드 게임으로 악당과 대결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선우앤컴퍼니는 “믹스마스터는 세계 8개 나라에서 지금도 즐기고 있는 인기 게임이다. 당시 TV시리즈 해외 배급 실적이 250만 달러에 달했고 영국 니켈로디언 채널에서 주간 랭킹 3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높았는데 지금 다시 방영해도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손오공은 자사 애니메이션 하얀마음 백구의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를 출시했다. 하얀마음 백구는 가난한 어린 남매와 하얀 진돗개 백구와의 우정을 그린 작품으로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과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을 화면에 담았다. 2000년 방영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게임으로도 나왔고, 가수 이수영이 부른 주제곡은 레전드 애니메이션 OST로 꼽힌다.


손오공 브랜드 마케팅팀 담당자는 “그 시절 눈물 버튼으로 불린 하얀마음 백구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며 “20∼30대에게는 향수를, 10∼20대에게는 신선함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캐릭터 라이선싱 및 IP 개발 기업 더콘즈는 팬시 상품 1세대 기업으로 꼽히는 바른손의 레트로 캐릭터 슬리핑코를 다시 소환했다. 슬리핑코는 항상 꾸벅꾸벅 졸고 있는 작은 토끼 캐릭터로 싸이월드의 테마 화면, 2G폰 배경 화면, 벨소리 음원 서비스가 나오는 등 2000년대에 10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2001년에는 문화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선정한 올해의 캐릭터 베스트 10에 선정되기도 했다.

 

 

웹툰 산업 성장세 주춤
승승장구하던 웹툰 산업의 성장세가 둔화하는 모습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내놓은 2024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올해 웹툰을 유료로 결제한 독자를 대상으로 월평균 지출액을 물었더니 ‘1,000∼원 이상 3,000원 미만’이란 응답이 23.0%로 가장 많았다. ‘5,000∼원 이상 1만 원 미만’이 22.8%, ‘3,000∼원 이상 5,000원 미만’이 18.6%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에는 ‘5,000∼원 이상 1만 원 미만’이라는 응답이 25.3%로 가장 많았고 ‘1만∼원 이상 3만 원미만’이란 응답자가 19.8%였던 것에 비하면 웹툰을 보려고 쓰는 돈을 줄이고 있는 셈이다. 만화·웹툰 관련 상품 구매 경험이 있는 사람도 지난해 45.0%에서 올해 29.9%로 급감했다.


웹툰 산업을 이끌고 있는 네이버, 카카오의 수익성 악화도 웹툰 산업의 현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카카오는 콘텐츠 부문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카카오웹툰, 카카오페이지를 운영하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일본 시장을 겨냥한 픽코마 등의 웹툰 사업 실적을 가늠할 수 있는 스토리 매출이 12.2% 감소했다. 네이버웹툰의 미국 본사인 웹툰엔터테인먼트의 3분기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9.5% 증가했지만 영업 손실도 19.8% 늘었다.


이들 기업은 돈벌이가 안되는 곳의 사업을 정리해 수익성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카카오 픽코마는 프랑스 유럽 법인 철수를 결정하고 9월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인도네시아와 대만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 NHN은 최근 대만 웹툰 서비스 포켓코믹스를 종료했다. NHN은 2022년 베트남에서 철수하고 지난해에는 태국 코미코 법인도 매각했으며 독일에서 서비스한 포켓코믹스도 문을 닫았다.

 

 

[아이러브캐릭터=장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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