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범강의 웹툰 이야기 56] 2026년은 문화콘텐츠 산업 대전환 시대

Column

서범강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6-02-19 16:00:47

2026년 문화콘텐츠 산업은 과거 어느 시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심층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했다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라 산업의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재편되는, 일종의 문명적 전환에 가깝다. 2025년이 혼란의 파도 속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적응의 시기였다면, 2026년은 그 적응을 넘어 본격적으로 기술과 인간의 역할이 재정의되는 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어진 경기 침체, 복잡한 지정학적 갈등, 다양한 사회적 피로도가 콘텐츠 시장을 압박했지만, 동시에 AI·글로벌 디지털 생태계·세계관 중심 소비라는 새로운 흐름이 산업 전반에 예상치 못한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웹툰 산업은 이러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을 동시에 마주하며 문화산업 전반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2026년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재정비와 재정렬을 위해 산업 전반의 구조적·전략적 구도를 다시 짜는 ‘리셋’이다. 경제는 완만한 회복과 함께 소비 구조가 다시 짜이고,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은 콘텐츠 제작 방식과 유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으며, 소비자는 더 복잡하고 더 정교한 선택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의 기준과 접근 방식으로는 더 이상 독자의 감정적·지적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우며 콘텐츠는 단순히 소비되는 오락물이 아니라 정체성 형성, 사회적 경험, 문화적 해석이 중첩되는 복합적 서사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다중 산업이 새롭게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리셋’을 통해 만들어내는 질서가 앞으로 10년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는 AI 기술뿐 아니라 세계관 기반의 IP 비즈니스, 쇼트폼 중심의 소비 전환, 그리고 인간 창작자로부터 비롯되는 신뢰라는 무형의 가치가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 환경을 살펴보자. 2025년 한국 경제는 1% 남짓한 저성장 국면에 머물렀다. 이러한 둔화는 고금리 기조의 장기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수출 부진, 제조업 중심 성장 모델의 구조적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내수 경기 위축과 가계 실질소득 감소는 소비심리를 압박하며 콘텐츠 소비 전반에도 여파를 미쳤다.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은 소비자의 지갑을 차갑게 얼렸다.

 

그러나 2026년은 주요 국제기관들이 일제히 성장 전망을 상향 조정하며 거시경제 전반의 회복 가능성을 확인한 해이기도 하다. 반도체와 AI 산업이 구조적 성장 국면으로 진입함에 따라 수출 및 제조업 전반의 활력이 되살아나고, 이에 기반해 가계의 실질소득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 기대되면서 선택적 소비 영역에서 회복세가 포착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소비 반등을 넘어, 기술 주도 산업이 다시금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공연·게임·쇼트폼 콘텐츠·구독 서비스와 같은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는 이러한 소비 회복의 최전선에 서 있다.


웹툰 역시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비교적 꾸준한 소비를 유지해 온 산업으로 그 영향이 자연스럽게 반영되며 경기 회복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먼저 검증된 고퀄리티 IP나 흥행 반열에 오른 IP에 대한 유료 결제는 더욱 강화되고, 동시에 반대편에 위치한 광고 기반 무료 콘텐츠의 수요 역시 증가하는 두 갈래의 양극화 구조가 병존한다. 따라서 2026년 산업은 이 두 소비층을 동시에 설계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


소비자 변화는 경제 변화보다 더 극적이다. 일상은 점차 AI가 제공하는 편의성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으로 흡수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편의의 무의식적 수용은 소비자 행동의 구조적 변화를 촉진하는 핵심 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콘텐츠 플랫폼에서 탐색의 과정은 점점 사라지고 AI가 먼저 추천하고 사용자가 따라가는 패턴인 이른바 ‘제로 클릭’소비 환경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는 독자가 콘텐츠를 찾는 시대에서 콘텐츠가 독자를 찾아가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하지만 편리함의 이면에는 근본적인 역설이 자리하고 있다. 소비자는 여전히 AI가 제공하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강한 불신을 갖는다. 표현에 있어 왠지 모를 이질감이라던가 인간적인 결의 부족함, 감정과 감성에 대한 불완전성, 그리고 AI 특유의 기계적 피드백 방식이 소비자에게 건조하고 깊이 없는 콘텐츠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이중적 태도는 산업에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일반적인 생활의 패턴이나 확실한 결과와 예측되는 반응의 경우와 달리 콘텐츠 산업은 AI 기반 효율성과 인간 기반 감정성이라는 두 가지 축을 균형 있게 통합해야 한다.


나아가 잘파(Zalpha)세대는 문화 소비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들은 초단위로 쪼개진 짧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싶어 하며 가볍고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스낵컬처형 콘텐츠를 선호한다. 동시에 자신을 표현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탁월하게 능숙하며 아바타·버추얼 캐릭터 등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세대다. 가격보다 가치를 우선하며 세계관 중심의 콘텐츠 소비에 깊이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웹툰은 이미지 기반의 직관적 구조와 높은 세계관 확장성을 지니고 있어 이들의 취향과 잘 맞는다. 쇼트폼, 버티컬 영상, 게임, 굿즈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하기에도 최적화된 포맷이 바로 웹툰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변화는 어떨까. AI는 이미 웹툰 제작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하는 데 최적화되고 있으며 단순 편의성을 넘어 제작 구조 자체를 혁신하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배경·채색·식자·번역 자동화는 물론이고 스토리 전개를 추천하거나 콘티 구성을 보조하는 AI까지 등장했다. 이제 1인 작가에게 조금 버거웠던 주 1회의 실시간 연재까지도 실현 가능한 시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작품의 감정선과 정체성을 책임지는 것은 결국 창작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독자는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닿은 창작물을 더 높은 가치로 평가하며, 오로지 AI로만 뽑아낸 콘텐츠와는 정서적 울림은 물론 보상에 대한 가치에서도 차이를 두게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휴먼 인 더 루프(Human in the Loop)’체계는 웹툰 산업의 핵심적인 신뢰 장치가 될 수 있다. AI가 작업 효율의 역할을 맡고 사람이 감정과 철학을 책임지는 구조는 기술과 이야기의 융복합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아갈 전망이다.


HITL은 단순한 제작 방식이 아니라 AI 기반 제작 환경에서 ‘이 작품은 누가 만들었으며 어떤 과정이 개입되었는가’를 증명함으로써 창작의 출처와 인간적 개입의 범위를 명확히 할 수 있다. 작품의 정체성과 신뢰성을 보증하며 인증 체계의 핵심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HITL 체계는 단순 기술 활용 여부를 넘어 창작 주체성의 투명성·책임성·정당성을 확보하는 기준점이 되며 독자가 작품에 느끼는 감정적 신뢰와 산업 전반의 윤리적 안정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기술이 창작의 속도를 높이고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정체성과 감정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가치는 창작자의 고유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플랫폼 경쟁은 산업의 판도를 뒤흔드는 또 다른 요인이다. 네이버는 ‘컷츠(Cuts)’기능을 중심으로 쇼트폼 최적화 생태계를 구축하며 글로벌 MAU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카카오는 ‘헬릭스 쇼츠(Helix Shorts)’를 내세운 자동 쇼트폼 생성 시스템과 2차 IP 확장 전략에 집중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북미·유럽·중국 등지의 현지 플랫폼들이 웹툰 시장에 진입하게 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제 플랫폼의 승패는 단순히 더 많은 작품을 확보하는 데 달려 있지 않다. AI 추천 알고리즘에서 얼마나 상위 노출을 확보하느냐, 사용자의 시간을 얼마나 오래 붙잡아 두느냐, 그리고 IP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운영하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장르 트렌드 구도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회귀·환생·빙의와 같은 이세계 기반 장르는 급격한 피로감을 드러내며 하락세로 전환하고 있다. 대신 독자의 현실적 감정과 사회적 스트레스에 공감하는 현실 침투형 판타지나 하이퍼리얼리즘, 스마트폰 환경과 결합한 인터랙티브 스릴러·호러,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직업 서사 등이 부상하고 있다.

 

이는 웹툰에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기존의 약점을 타파하고, 새로운 확장과 성장의 가능성을 키워 진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웹툰 산업의 가장 큰 성장 동력은 여전히 글로벌 시장이다. AI 번역 기술의 고도화는 언어 장벽을 파괴하고 있으며 머잖아 웹툰이 전 세계적으로 실시간 공개되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북미와 유럽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성장 잠재력이 크고, 2030년까지 글로벌 웹툰 시장은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웹툰은 이미지 기반 매체이기에 번역 한계가 적고 서사의 보편성 확보가 수월하며 IP 확장 가능성까지 높아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유리한 형태의 콘텐츠다. 그러나 기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AI 학습 데이터의 윤리성 논쟁, 저작권 문제, AI 이미지 표절 이슈, 플랫폼의 책임 소재 등 기술의 융합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 제기가 산업의 신뢰 기반을 흔들 수 있다. 플랫폼과 정부는 AI 사용 기준, 데이터 투명성, 창작자 보호 규범 등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웹툰 산업은 기술 산업과 예술 산업의 속성을 동시에 가진 독특한 산업이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 설계 능력이 곧 산업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결국 2026년은 웹툰 산업이 기술의 시대를 인간 중심의 사고를 통해 재정의하는 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기술이 아무리 빠르게 발전하더라도, 독자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감정·정체성·세계관·신뢰와 같은 인간적 요소다. 2026년 이후 웹툰 산업은 기술 혁신에서 제도 정착, 다음은 글로벌 확장에서 세계관 경제 심화라는 네 단계를 거치며 새로운 성장 궤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의 창작 의지와 그것을 지탱하는 신뢰라는 토대가 존재하는 것도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필자의 제안이 변화의 흐름을 읽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기를 바란다.

 

 

서범강
·(사)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
·아이나무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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