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면의 진품명품 36] 듀프 제품의 유행

Column

김종면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5-04-11 11:00:25

최근 언론 기사에서 듀프(Dupe)라는 생소한 용어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이번에는 위조 상품과 달리 정식 매장에서 유통하는 제품이면서 대부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일명 듀프 제품에 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듀프는 복제를 의미하는 영어 ‘duplication’에서 유래했다. 최근 월마트에서 에르메스 버킨백과 비슷한 디자인의 천연 가죽 소재의 여성용 백을 출시하면서 화제가 됐고 이를 많은 언론이 보도하면서 듀프 제품이 크게 주목받았다.


듀프는 디자인을 그대로 베끼고 브랜드까지 도용해 진품인 것처럼 판매하는 일명 짝퉁과는 다르다. 듀프는 오리지널 제품만의 대표적인 특징을 적용해 유사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제품을 그대로 베끼기보다 그 특징을 적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든 것이다. 브랜드 역시 오리지널 제품의 브랜드가 아니라 듀프 제품을 생산한 회사의 브랜드로 판매한다는 점, 마트나 정식 매장에서 유통한다는 점, 구매자도 오리지널 제품으로 착각하거나 짝퉁이 아니라 오리지널 제품의 특징을 일부 적용했지만 저렴한 가격 등 그 제품만의 가치를 인정해 구매한다는 점에서 듀프 제품과 짝퉁 제품은 차이가 있다.


특히 듀프 제품은 고가의 제품과 비슷하지만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대체품인 경우가 많다. 최근 듀프 소비가 전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젊은 세대를 이르는 젠지(GenZ) 세대에서 그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듀프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경기 침체와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많다. 한때 욜로(YOLO)족 또는 요노(YONO)족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에서, 요노는‘You Only Need One’에서 온 말이다.


욜로는 미래를 위해 현재 최대한 아껴 저축한다는 기성세대의 사고방식과 달리 지금 현재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며 현재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아낌없이 지출하는 젊은 세대의 생활 방식을 일컫는다.


그에 반해 요노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는 트렌드를 뜻한다. 가성비 등을 고려해 최소한의 소비로 최대한의 만족감을 추구하는 소비를 지향한다는 특징이 있다. 듀프 소비는 이러한 요노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소비가 크게 위축되면서 값비싼 명품 대신 품질이 유사면서도 가격은 크게 저렴한 제품을 찾아 소비하는 듀프 소비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크게 유행하는 것이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2025년 새해 소비 트렌드 전망에 따르면 응답자의 80.7%가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불필요한 물건 구매는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라고 답했고 ‘보이는 소비보다 내가 만족하는 실용적인 소비를 선호한다’는 답변도 89.7%에 달한 것을 보더라도 취업난과 경기 침체로 소득이 줄어든 젊은 층이 과시적인 소비보다 실속 있는 지출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이 자연스럽게 듀프 소비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월마트의 일명 월킨백 사례 외에도 값비싼 룰루레몬 제품 대신 비슷한 스타일의 값싼 제품이 인기를 끈다거나 고급 화장품 대신 다이소에서 아주 저렴하면서도 어느 정도 제품성이 보장되는 화장품을 구매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나아가 전자 제품 분야에서도 고가의 스마트워치나 마우스 대신 그와 기능이 유사하면서도 가격은 몇 분의 일로 저렴한 대체품을 찾아 소비하는 것도 듀프 소비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듀프 제품은 짝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찌 되었건 오리지널 제품의 핵심적인 제품 특징, 특히 제품의 디자인이나 스타일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으므로 오리지널 제품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듀프 제품도 엄연히 해당 분야에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는 기업에서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기업이 듀프 제품을 출시하면서 지식재산권에 대한 고려 없이 제품을 만들었을까? 충분한 법률 검토를 거쳤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듀프 제품은 여전히 지식재산권 관점에서 보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짝퉁 제품이냐 아니냐의 경계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간 듀프 제품은 아니지만 유사한 형태의 제품이 오리지널 제품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해 분쟁이 발생하거나 소송에서 침해로 인정받은 사례가 없지 않다. 에르메스 버킨백에 눈알 모양을 붙인 일명 눈알백의 경우 에르메스와의 분쟁으로 대법원까지 간 사례다. 명동에 매장을 둔 P사가 에르메스의 켈리백 또는 버킨백과 유사한 모양의 핸드백에 큰 눈알 모양의 도안을 부착한 핸드백을 제작해 10만∼20만 원에 판매했는데 에르메스는 “켈리백과 버킨백 형태와 유사한 모양으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것은 부정경쟁행위”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눈알 가방과 에르메스의 켈리백·버킨백을 외관상 혼동할 우려는 없다”면서도 “켈리백과 버킨백이 가진 고유한 가방 형태로부터 인식되는 상품의 명성이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구매 동기가 된다”며 에르메스의 손을 들어줬다.

 

2심은 “국내 업체 제품의 창작성과 독창성 및 문화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P사가 에르메스 제품 형태의 인지도에 무단으로 편승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부정경쟁행위로 볼 수 없다”면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하지만 대법원 상고심은 “P사가 상품 표지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에르메스가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든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8월 미국 고급 가구 브랜드 월리엄스소노마는 듀프닷컴 서비스를 운영하는 캐롯카트(Carrot Cart Inc.)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했다. 듀프 닷컴은 유명 제품과 유사한 스타일의 저렴한 제품을 선별해 해당 쇼핑몰로 연결해 주는 서비스다.

 

이처럼 듀프 제품은 짝퉁 제품과 달리 지식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오리지널 제품의 느낌만을 살리면서 구매자가 저렴한 비용으로 실속 있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지식재산권 침해 소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여전히 오리지널 제품의 특징을 그대로 적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오리지널 제품의 제작사가 지식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권리를 행사한다면 상표권 침해는 아니겠으나 저작권 침해 또는 부정경쟁행위로 타인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이라고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듀프 제품은 결국 오리지널 제품의 브랜드 명성을 훼손시키거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듀프 제품, 그리고 듀프 소비 트렌드가 지속된다면 법원의 추가적인 판결 등을 통해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때까지는 지식재산권 침해 여부에 대한 어느 정도의 혼선은 계속 이어지리라 본다.


캐릭터와 관련된 듀프 제품이 시장에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 캐릭터의 경우 해당 캐릭터의 분위기나 특징이 명확하고 만약 이러한 특징을 제품에 적용해 판매하는 제품이 있다면 듀프 제품이 아니라 저작권을 침해하는 불법 제품 내지 위조 상품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유명 캐릭터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특징을 차용하지 않고 유명 캐릭터의 일부분, 즉 눈, 코, 입처럼 얼굴의 특정 부분만을 차용한다거나 캐릭터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나 장식 등을 차용해 상품화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해당 캐릭터의 핵심적인 부분을 그대로 사용해 소비자가 그 제품을 보면 그 캐릭터를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수준이라면, 이는 듀프 제품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판매되기보다 법적 제재를 받을 공산이 크다.

 

 


김종면
·위고페어 대표(AI 기반 온라인 위조 상품 모니터링 플랫폼 위고페어 운영사)
·이메일: kjm4go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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