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만드는 건 나를 찾아가는 여정 _ 독립영화관 54 _ 현유정 감독

애니메이션 / 장진구 기자 / 2022-06-22 08:00:44
Interview
친구와 주고받는 대화에서 발견한 일상 속 감정의 전이, 우두커니 TV를 바라보는 아빠의 뒷모습에서 배어나오는 쓸쓸함, 연애를 하면서 느꼈던 불편한 감정들. 현유정 감독이 만든 작품 속 이야기의 출발점은 나 자신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작품이란 곧 나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행이자 과정이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있다.
사실 애니메이션의 길을 갈 계획은 전혀 없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작가의 회화전을 보고 나서 처음 애니메이션에 눈뜨게 됐다. 움직이는 이미지처럼 보이는 작품에 매료됐다고나 할까. 이전까지는 하나의 장면에 의미를 넣는 작업을 해왔다면, 이 전시를 보고 나서부터는 이야기가 있거나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의미를 보여주는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독립출판서점에서 운영하는 워크숍에 참여해 이야기를 만들고 스토리보드 작업을 진행하면서 애니메이션에 더욱 흥미를 느껴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진학을 결심했다.


드로잉 선이 가늘고 단조롭던데? 소위 합격을 위한 그림기법을 익혀야 했던 입시 과정을 거쳐 대학에서는 그저 잘 그렸다는 소리를 듣기 위한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것 같다. 사실 20대 초반까지는 잘 그린 그림에 대한 갈망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내가 좋아하고 잘 그릴 수 있는 그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 그러다 워크숍에서 크로키 같은 속사화를 그리거나 낙서를 많이 했는데 투박한 그림이나 정제되지 않은 간결한 선들이 내 생각과 색깔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느꼈다. 또 이런 스타일이 너답다는 주위의 반응도 많아서 나만의 독특한 작화체로 굳어진 것 같다.

 


작품들을 소개해달라 마음과 마음(2018)은 살면서 서로에게 주는 영향력과 그로 인한 심리변화를 다룬 이야기다.
친구나 가족끼리 나누는 얘기에는 감정이 스며 있는데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 듣는 사람에게 옮겨져 기분이 동기화되는 경험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어딘가에, 숲(2019)은 마음이 허전하고 수동적이었던 한 남자가 TV에서 숲이란 이상적인 공간을 보고 차츰 어딘가에 있을 자신만의 숲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담았다. 대리만족의 대상이자 안식처인 TV 속 세상을 동경하는 아빠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허무함과 쓸쓸함을 표현하려고 했다. 여주인공 와이가 남자친구 세모를 만나면서 느꼈던 작은 불편들을 표현한 서로의 조각(2020)은 내가 연애하면서 겪거나 생각했던 감정을 그린 작품이다. 좋은 의미로 다가왔던 상대의 호의가 나중에 돌아보면 불편한 구속과 억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묘사했다.

 


작품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생각은? 마음과 마음에서 뾰족한 가시 뭉치를 토해낸 주인공은 새롭게 만난 상대가 뱉어내는 것들에 영향을 받은 나머지 탈출할 수 없는 삼각형에 갇혀버리고 마는데, 나쁘거나 아픈 감정이 누군가에게 전이되는 과정이 일상에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표현했다. 어딘가에, 숲은 내게 평소 치유의 공간이었던 숲이 각자의 마음속에 여러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란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아빠의 마음에도 활력소가 되는 숲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서로의 조각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지켜준다는 의미에서 행하는 말이나 행위들이 구속과 억압으로 비춰질 수도 있음을 드러내려고 했다. 상대를 책망하기보다 관습적인 여성상이란 틀에 스스로를 가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 남녀가 동등한 위치와 시선으로 서로를 존중하길 바라는 마음이 관객들에게 전해지길 바랐다. 세 작품 모두 내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과 이미지를 조합해 만든 것이어서 궁극적으로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곧 진정한 나를 성찰하며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로 다루고자 하는 주제나 세계관은? 서로의 조각이 의도하지 않게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비춰졌다. 사적인 얘기이자 감상이었을 뿐 거창한 의미를 담은 건 아니었는데 대한민국에 사는 20대 여성의 이야기이자 페미니즘의 이야기로 확정돼 관객들의 반응이 상당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나와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사회적 이슈와 접목해 나름의 의미를 지닌 작품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드리머(Dreamer)란 곡의 뮤직비디오를 만들게 된 배경은? 지난해 가수 타임플라워(TIME FLOWER)가 보낸 메일을 받았다. ‘자신의 음악과 결이 비슷한 것 같아 감독님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제작을 의뢰하고 싶다’ 는 내용이었다. 그가 전국의 애니메이션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만든 작품을 죄다 찾아보다 내 작품을 눈여겨보고 직접 연락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내심 감탄했다.(웃음) 내 이야기를 풀어놓는 건 익숙했지만 누군가의 세계관을 대신 전하는 건 낯설었다. 그래서 우선 노래를 만든 배경과 나와의 공통점을 찾아 소재와 주제를 정하기로 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떠났던 밴드 동료들이 우연한 기회로 다시 함께 무대에 섰을 때의 복잡한 감정을 떠올려 드리머란 곡을 만들었다고 했다. 같은 길을 걷던 친구들이 서서히 각자의 길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워했던 내 경험과 비슷해 많이 공감했고 함께 같은 꿈을 꾸고 서로를 응원하는 내용의 가사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를 어떻게 표현할까 궁리하던 중에 문득 나비가 떠올랐다. 나비는 잡으려 할수록 달아나지만 어느 순간 내 곁에 다가와 있지 않나. 그래서 멀게만 보이던 꿈과 행복이 나비처럼 어느 순간 그렇게 다가와 있을 것이란 주제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준비 중인 프로젝트나 향후 계획은? 다음 작품 역시 내 얘기로 시작하겠지만 소재에 대한 고민은 많다. 이제는 졸업 작품도 슬슬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어서 머릿속이 복잡하다.(웃음) 차기작은 제주도에서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무차별로 삼나무를 벌목해 논란이 된 사건을 다루고자 한다.
고향이 제주도인 데다 고민이 많을 때마다 찾아가 생각을 다듬던 숲이란 공간의 파괴를 바라보는 내 감정과 사건의 의미를 담아보고자 한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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